<원더풀 라디오> 시나리오 쓴 <두시탈출 컬투쇼>의 이재익 PD



글쓰기가 주식, 골프보다 재밌다

“시나리오작가협회, 카피라이터협회, PD협회, 소설가협회에 다 가입해 있어요.” <두시탈출 컬투쇼>가 방송되는 현장, SBS 라디오 방송국에서 만난 이재익 작가는 다종다양한 자신의 정체성을 설파한다. <원더풀 라디오>를 비롯해 <질주> <목포는 항구다>의 시나리오작가인 그는 <두시탈출 컬투쇼>의 PD이자, <압구정 소년들> <아버지의 길> <싱크홀> 등 10여편의 소설을 쓴 소설가이기도 하다. 낮엔 근무하고 밤엔 글쓰는 주경야독형 작가, 이재익 작가를 만났다.

라디오 방송국을 소재로 한 시나리오를 쓰게 된 동기가 뭔가.

<웰컴 미스터 맥도날드> 같은 소동극이나 <라디오 스타> 같은 마이너한 방송국 이야기는 있다. 그런데 메이저 방송국에서 벌어지는 일을 정면으로 다룬 이야기는 없더라.

라디오 방송국은 사연과 에피소드가 무궁무진한 공간이다. 특별히 중점을 둔 부분은.

나와 친한 백지영과 방송을 함께한 허수경을 모델로 삼았다. 둘 다 시련을 겪었지만 재기했고, 노력하는 방송인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따뜻한 시선으로 이들의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

실제 촬영 때도 자문 역할을 톡톡히 했다는 후문이다.

촬영장에 이렇게 많이 간 건 처음이다. PD의 큐사인, 작가의 움직임, DJ의 표정 하나하나를 다 조언해줬다. 물론 제일 큰 공은 SBS방송국이라는 브랜드와 공간을 제공하는 데 내가 일조했다는 거다. 자사 드라마 외엔 공개를 잘 안 하는 편이라 회사쪽을 많이 설득했다. 카메오로 출연한 컬투나 가수들 섭외에도 참여했고.

시나리오로만 이번이 세 번째다.

이상인 감독의 <질주>가 처음 쓴 시나리오였다. 군 제대하고 한달 이상 감독님 집에서 같이 생활했다. 제대 뒤 할 일이 별로 없어 시나리오 작법서 같은 것들을 보고, 영화도 닥치는 대로 봤다. 이후에 시나리오를 계속 쓰게 됐다. 빨리, 많이 쓰는 훈련을 했다.

라디오 PD, 시나리오작가, 소설가 등 서로 다른 성향의 일들을 한꺼번에 하게 된 이유가 뭔가.

영화가 아니라 이야기가 좋다. 이야기의 본령은 소설이라고 생각하고, 그래서 소설가가 되고 싶었다. 문학동네 최종심사까지 갔다가 고배를 마신 적이 있는데 그때 순수문학과 대중문학 사이에 존재하는 갭을 느꼈고, 반감을 가졌다. 너무 어렸던 거지 내가. 그 객기로 7년간 소설을 안 썼다. 남들은 강남 출신, 서울대 출신, PD라는 타이틀만 보고 다 잘 풀렸을 거라 생각하지만 한때 술로만 지내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련에서 나를 구해준 것도 글쓰기였다.

소설을 쓸 땐 시나리오화되는 걸, 시나리오를 쓸 땐 소설을 염두에 두는 멀티한 작업을 할 것 같다.

시나리오작가가 영화 총제작비의 몇 퍼센트를 가져갈까? 정말 감독이나 PD들이 시나리오작가들의 권익을 보호해줄까.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소설은 내 저작권을 지키는 가장 좋은 방법이기도 하다. 이런 방법으로 작업할 수 있다는 게 행운이라고 생각하고, 요즘은 시나리오작가들에게 내가 어떤 식으로 도움이 될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다.

영상소설 <노벰버 레인>이야말로 이런 형태의 작업에 딱 맞는 작품으로 보인다. 아예 영화화를 염두에 두고 쓴 작품인가.

그런 건 아니다. 사진을 같이 보여주자는 건 출판사 가쎄 대표님이 직접 제안한 거다. 원고를 보고 직접 내용에 맞는 컨셉과 공간을 다니며 사진을 찍으셨다. 소설의 무대가 되는 싱가포르까지 가셨으니 제작비도 많이 든 소설이다. 덕분에 소설을 보면 이미 영상처럼 머리속에 그림이 그려진다. 결혼 뒤에도 11월이 되면 일정 공간에서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는 여자의 사연 인데 영화로 만든다면 특히 기대되는 건 <정사> 분위기의 이미지를 보여줄 수 있겠다는 거다. 요즘엔 이런 센 멜로는 별로 없지 않나. 아직 영화화하자는 제안은 없는데, 기사 보면 연락 오지 않을까? (웃음)

작업량이 상당한데, 직장인으로서 물리적인 작업 방식도 궁금하다.

간단하다. 이걸 더 하는 게 아니라 다른 걸 안 한다. 주식, 골프, 게임 같은 30대 중반 내 또래가 관심 가지는 것들을 하지 않는다. 만남도 일주일에 3회로 제한한다. 주 4일 퇴근 뒤 저녁 7시30분부터 새벽 2시까지는 규칙적으로 글을 쓴다. 글쓰기가 내겐 주식이나 골프보다 재밌고,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푸는 탈출구이기도 하다. 병행생활 5년째인데, 앞으로 1년에 소설 3~4편, 시나리오 한편 정도는 고정적으로 쓰고 싶다. 범작에 대한 두려움을 버린다면 할 수 있다.


씨네 21 - 글 : 이화정 / 사진 : 손홍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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