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스터> 황인호 감독



내 시나리오는 내가 책임진다

"그래서 내가 이런 레퍼런스 무비까지 만들지 않았겠나." 수월하게 투자받은 건 아닐 것 같다는 질문에 <몬스터>의 황인호 감독이 선뜻 보여준 건 자신의 휴대폰에 담긴 동영상 편집 클립이었다. <웰컴 투 동막골> <아저씨> <괴물> <황해> <밀양> 등의 장면이 편집되어 있고 거기에 짧은 설명들이 붙어 있는, 자신이 <몬스터>에서 그리려는 캐릭터나 장면 컨셉을 투자자들이 잘 알고 있는 영화를 통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동시에 구미가 당길 수 있도록 하는) 일종의 프레젠테이션용 동영상 자료다. 이것이 영화 <몬스터>의 태생을 말해주는 적절한 일화일 거다. 별도의 변칙적인 설득 과정이 반드시 요구될 만큼 <몬스터>의 지향이 별스러웠다는 사실. 우리는 그 별스러움에 이끌려 호기심이 일기 시작했다. <몬스터>를 만든 몬스터는 누구인가 만나보고 싶어진 것이다.

원래는 시나리오작가로 일해왔다고 알고 있다.

나는 오리지널 시나리오가 영화의 반을 책임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시나리오작가가 중요하다는 거다. 영화 한편이 나왔을 때 감독만 인터뷰 요청을 받는 경향이 있는데 그런 것도 좀 문제다.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감독이 다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시나리오작가로서는 서운할 때도 있다. 시나리오를 쓰는 일은 백지에서부터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작업이다. 영화의 철학까지 포함해 많은 것들을 새로 집어넣어야 한다. 난 이제 감독이 됐으니 다소 무관해졌지만, 여전히 시나리오를 쓰는 많은 작가들은 그들 입장에서 상처를 받을 것 같다. 만약 <몬스터>에 따로 시나리오작가가 있었다면 나는 그에게 먼저 인터뷰를 하라고 권했을 것이다.

<오싹한 연애>부터는 연출과 각본을 병행하고 있다. 하지만 연출을 전공하거나 한 건 아니더라.

영화의 방향을 시나리오작가만큼 잘 아는 사람은 없다. 어떤 포인트에서 무엇을 어떻게 보여줘야 하는지 스스로 알기 때문에 거기에 필요한 영상화의 방법만 더 고민하면 된다. 연출은 주변에 물어보면서 독학했다.

첫 작품으로 <시실리 2km>의 시나리오를 썼다. 공동각본가로 이름이 올라있던데, 초안을 써서 넘긴 것인가, 함께 공동집필한 건가. <몬스터>와 연결되는 어떤 색깔이 있다.

야, 이거 <시실리 2km>를 다 말하게 되네. 사실 그 영화와는 얽힌 사정이 있는데 다 말하기는 좀 그렇다. 어쨌든 내용에 대해 말하면, 정말 유치한 생각에서부터 시작된 이야기다. 내가 남양주 외진 데에 산 적이 있다. 살던 동네가 딱 영화 속 시실리 같은 느낌이었다. 어둑어둑한 밤길을 걷는데 문득 호러물을 써야겠단 생각이 들더라. 한국형 귀신을 그리고 싶었다. 그런데 그냥 귀신은 너무 밋밋하지 않나. 만약 그 귀신이 충청도 사투리를 쓰는 충청도 사람이었다면 어떨까 생각했다. 다음으론 왜 귀신이 그렇게 됐을까 역으로 생각하니 주변 인물들도 차례로 떠올랐다. 그리고 그 인물들의 사연과 성격도 잡혔다. 나는 주로 그렇게 장르보다는 캐릭터로 작품을 시작한다.

<도마뱀> <두 얼굴의 여친> 시나리오도 썼다.

<도마뱀>은 병을 앓는 여자가 남자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헤어지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는 감정이 좋았다. 여자는 외계인 핑계를 대면서 사라지려 하고 남자는 알고도 거기에 속아준다. <두 얼굴의 여친>은 다중인격 캐릭터가 매력적이었다. 여자가 두 인격을 지녔기 때문에 남자는 1:3으로 연애를 하게 되는 셈인데 여자가 정상이 되기 위해서는 다른 인격은 사라져야 한다. 그래서 그건 죽음을 의미한다고 생각해서 정려원이 점점 늙어가며 사라지는 장면을 넣은 것도 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장면들 역시 만약 내가 연출까지 했다면 좀 다른 방식으로 나오긴 했을 거다.

그 마음이 <오싹한 연애>의 연출을 도맡도록 부추겼나보다.

내가 좀 많이 유별나다. 내 글에 손대는 걸 내 여자에게 손대는 것처럼 느낄 정도다. 그런 내가 다른 감독에게 내 시나리오를 맡긴다는 게 처음부터 아이러니였다. 연출을 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나보다. (웃음) 다른 작가들은 이 모든 고민을 다 뛰어넘어, 탈고하고 나면 ‘이제 내 새끼 아니니 알아서 하십시오’ 하는 자세를 취한다더라. 당연히 그렇게 하는 게 맞는데, 난 그게 안 됐다.

취향으로 따지면 어떤 영화가 재미있는 영화라고 생각하나.

내가 좋아하고 재밌게 본 영화는 대개 대중적으로 성공한 영화들이다. 하지만 그 안에 자기 색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 각본 하나를 쓰는 데만 2, 3년 걸리고 어렵게 투자까지 받아 영화로 만들기까지는 5, 6년이 걸린다. 그 시간을 들여 한 작품을 만드는데 포맷은 똑같고 배경만 바꿔서 내놓는 건 너무 안일하지 않나. 스스로 용납이 안 된다. 남들이 가지 않은 지점에서 다른 캐릭터로 감독의 색을 드러내는 게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몬스터>는 호감이 가는 영화다. 하지만 전작 <오싹한 연애>는 그다지 호감 가는 영화가 아니었다.

잘 알고 있다. 그때는 매체들의 인터뷰 요청도 거의 없었으니까.

일단 <오싹한 연애>는 감독이 하고 싶은 걸 다 못한 것 같다.

맞다. <오싹한 연애>는 철저하게 대중 코드에 맞춰 썼다. 첫 영화가 망하면 두 번째 기회가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만의 색을 드러내되 선을 넘지 않는 게 목표였다. 하지만 엄청난 돈을 투자받아 만드는 상업영화에 감독의 색을 무조건 밀어붙이는 것도 문제라고 생각한다. 대중의 취향을 완전히 배신해선 안된다고 봤다. 처음 해보는 연출이라 마치 화성에 한번도 안 가본 사람이 화성에서 새 생활을 시작해야 하는 기분이었다. 사회성이 없는 편이라 <오싹한 연애> 제작보고회 때도 너무 떨렸다. 청심환 두알을 먹고 무대에 섰는데 맥주를 1000cc는 마신 것 같더라. 계속 헤롱헤롱 취해 있었다. (웃음) 촬영은 5회차가 지나니 슬슬 감이 생겼다. 그건 <몬스터>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초반엔 워밍업하듯 중요하지 않은 장면부터 찍고 난 뒤 본격적으로 작업을 시작했다.

<몬스터>는 투자받기 어렵지 않았나.

어려웠다. (웃음) 여러 곳에서 거절당했다. 보통 하나 성공하고 나면 그다음에는 밀어주는데 <몬스터>는 다 안 된다더라. 그래서 투자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투자자들을 위한 레퍼런스 무비까지 만들지 않았겠나. 그랬더니 바로 오케이됐다. 상업적으로 보일 만한 포인트만 짚어서 짜깁기했다. 물론 레퍼런스 무비라고 해서 그 장면들이 <몬스터>에 직접 영향을 준 건 아니다.

<몬스터>에서는 B무비의 냄새가 난다.

캐릭터의 빈틈을 헤집다보니 그런 느낌이 생기는 것 같다. 이를테면 익상(김뢰하)과 북한 호위총국 출신의 킬러 성문(배성우)이 크림빵 먹으면서 모의하는 장면이 그렇다. 바보 둘이 힘을 합쳐서 힘껏 머리 굴리는 느낌 아닌가. 하지만 <몬스터>를 B무비로 만들고자 하거나 그걸 지향한 건 아니었다. B무비라면 저예산으로 만들어야 하지 않겠나.

살인마 태수(이민기) 캐릭터에 관해선 부연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태수는 인간계에 존재할 만한 사람이 아니라고 설정했다. 그래서 태수의 자세한 일상은 보여줄 수 없었고 보여줘서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사람을 잡아먹는 데 거리낌이 없는 괴물이면서도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연쇄살인마의 상이어선 안 된다고 봤다.

하지만 그런 태수에게 가족이 있다고 설정되어 있지 않은가.

<몬스터>의 세계는 사실 네개의 층으로 이뤄진 먹이사슬이다. 문제를 일으키는 회사 사장. 사장의 돈을 빼돌린 익상과 그 무리. 그 밑에 태수. 그 아래가 복순이라고 봤다. 복순과 태수의 세계는 사실 만날 일이 없는 서로 다른 세계지만, 누군가에 의해 그 세계에 충돌이 생기고 두 사람의 세계가 만나게 된 것이다. 복순에게도 태수에게도 가족을 만들어준 건 그 두 세계를 이어줄 무언가가 필요해서다. 한편으론 태수가 복순의 세계로 넘어오는 과정 중에 생길지도 모를 이질감을 완화하기 위해서 태수의 가족은 주인공 복순처럼 좀 어리바리하게 만들었다.

중반부 이후부터는 시골에서 도시로 무대가 바뀐다.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복순을 끌어들이고 싶었다. 처연하게 도심을 헤매는 복순과 나리를 지켜보며 관객은 저것들 어떡하나 싶어 안쓰러워하게 될 것이다. 도시에선 아무도 그 둘에게 관심이 없으니까. 둘을 도와주려는 이도 없고 말이다. <몬스터>는 복수에 초점을 맞춘 영화가 아니다. 복순과 태수의 각각의 가족관계 속에서 인물들이 얽히고설키는 영화다. 사실 난 복수에 별로 관심이 없다. 내가 당했다고 해서 누군가에게 그걸 똑같이 갚아버리는 게 진정한 카타르시스를 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복수의 포맷을 이 영화에서는 어떤 장치로 사용했을 뿐이다.

김부선과 김뢰하를 어머니 경자와 아들 익상으로 설정했다.

<몬스터>는 조역들이 영화의 이야기를 끌어가고 주연들이 따라가는 형세다. 태수의 가족들이 가만히 있지 않고 자꾸 사고를 치니까 이야기가 계속 생겨나는 거다. 당연히 한 인물도 소홀히 할 수 없었다. 익상은, 이 사람 때문에 많은 일이 벌어지는 거라 중심을 단단히 잡아줄 수 있는 배우여야 했다. 익상이 그렇게 제대로 받쳐주는 역할이라면, 그 한편에는 좀 튀어나온 이미지가 있어도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어머니 경자 역을 김부선 선배에게 부탁드렸다. 김부선 선배는 시나리오보다 1.5배 정도 더 나가는 연기를 한다. 그래서 그렇게 아들 익상과 어머니 경자 둘을 붙여놨더니 영화의 클라이맥스인 족발집의 이상한 분위기와 어울리며 기괴한 분위기가 생겨나게 된 것이다.

족발집에서 그 둘의 투숏이 인상적이었다. 저 두 사람이 어머니와 아들이라고? 그런 의문을 품으면서 내내 영화를 보게 된다.

맞다. 사실 둘을 보면 ‘저들이 정말 엄마와 아들일까?’ 궁금해지지 않나. 그런 느낌을 끌어내고 싶었고 그게 재미있었다. 연출하면서 가장 쾌감을 느꼈던 부분도 족발집 장면이다. 둘이서 태수를 어떻게 해보겠다고 난리치는 상황이 비극적이면서도 우습게 보이기를 원했다. 비극을 비극으로만 그리는 건 재미없으니 희극적으로도 보이길 바랐다.

그런데 왜 김부선이었나.

영화 보지 않았나. (웃음) 달리 설명이 필요하겠나. 영화에서의 바로 그런 느낌을 원했다.

만약 그가 안 한다고 했으면 차선은.

바로 오케이하셨고 차선은 생각해보질 않았다.

영화 말미에 에필로그를 넣었는데.

영화 내내 피칠갑을 보여주지 않았나. 마지막 배경을 마을로 돌려놓고 흥분을 가라앉혀주고 싶었다. 뜸 들이듯이 혹은 관객을 다독이듯이. 인물의 일상은 그대로 이어진다는 걸 의미하기도 한다.

요즘 나오는 많은 한국 대중영화의 지향과 <몬스터>의 지향은 다소 다른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창작자 입장에서 딜레마다. 내가 가고자 하는 막다른 길로 달려갈 것인가, 어느 정도는 대중의 취향을 포용할 것인가. 그 사이에서 고민한다. <몬스터>는 앞의 작품이 상업적으로 잘됐으니 좀더 내 식대로 해보려 한 게 있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호불호가 갈리는 것 같다.(웃음)

차기작은.

멜로영화인데 탈옥영화처럼 보이는 그런 영화다. 주제적으로도 멜로와 탈옥이 섞여 있다. 시나리오는 9할 정도 썼고 뒷부분만 마무리하면 끝난다.

어떤가, <몬스터>가 흥행할 것 같나.

호불호는 갈리지만 흥행은 될 것 같다. 정통 스릴러를 생각하면 실망하겠지만 관객이 보기에 분명 재밌는 지점도 있을 거다. 스릴러의 외피를 쓴 두 가족의 얘기로 짐작한다면 재밌지 않을까 한다.


씨네 21 - 진행 : 정한석 / 정리 : 윤혜지 / 사진 : 백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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