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 - 황조윤



1000만 영화 `광해` 시나리오 작가 황조윤

영화에 대한 정치적 해석 3년 전에는 꿈도 못꿔
"왕자와 거지 표절? 천만에 그건 공유된 아이템"

2010년 2월. 황조윤 작가(41)는 한 영화 시나리오 작업을 제안받고 두 달간 고민에 빠졌다. 영화사가 제안한 작품 소재는 `광해`. 그가 받은 시놉시스는 `광해에게 대역이 있었다`는 내용이었고 이것을 어떻게 풀어낼지는 그의 몫이었다. 딱 봐도 미국 소설 `왕자와 거지` 컨셉트였다. 이미 많은 작품에서 다룬 소재라 이것을 과연 극복할 수 있을지가 고민이었다. 결국 그는 시나리오를 썼고 이 작품으로 10년 만에 그의 대표작이 바뀌었다.

`올드보이`에서 `광해` 작가로 변신한 황조윤 작가를 19일 서울 필동 매경미디어센터에서 만났다.

"두 편 다 내가 기획한 아이디어가 아니라는 점에서 콤플렉스가 있어요. 하지만 그 점이 여전히 나에게 할 일이 남았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흥분되기도 하고요."

그가 이번 작품을 수락한 이유는 기존 작품들과 다른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왕자와 거지` 컨셉트의 작품은 많았지만 `광해라는 인물을 통해 시대를 재해석한다는 점` `왕이 된 인간이 무엇이 되느냐`는 부분에서 차별성을 둘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표절 논란`에 대해 묻자 그는 조심스럽지만 단호하게 자기 생각을 말했다.

"어차피 이 이야기는 모두에게 공유된 컨셉트죠. `데이브`나 `카케뮤사` 등 작품에 공통 분모가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요. 영화를 풀어가는 방식에 있어서 상투적이라는 문제를 제기한다면 인정하겠지만 `표절` 문제를 제기한다면 양심에 떳떳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광해`가 관객 1000만명을 모은 것은 대선을 앞둔 개봉 시기와도 무관하지 않다. 왕의 대역이 오히려 왕보다 백성을 사랑하는 모습을 보며 많은 이들이 감동을 받은 것이다. 그는 `안철수가 떠오른다`는 반응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했다. 3년 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기 때문이다. `광해`를 둘러싼 다양한 해석에 "보는 사람 관점과 염원에 따라 영화가 달리 보이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예상치 못한 반응은 이뿐이 아니었다. 왕이 용변을 보는 장면은 그가 넣을지 말지 수차례 고민한 부분이었다. 그의 생각에는 `너무 나아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왕의 용변을 살피는 `매화틀`이 있었다는 것은 고증된 부분이지만, 신하들이 `경하드립니다`라고 말하는 장면은 추 감독의 연출로 덧입혀졌고 관객들은 이 부분에서 그의 예상과 다르게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지난 10년간 `올드보이` 작가로 불렸지만 그는 사실 `봄날의 곰을 좋아하세요?`로 데뷔했고 `야수와 미녀`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등 로맨틱 코미디 작품을 주로 써 왔다.

"제가 작품에서 보여주고 싶은 건 `사람은 누구나 이면을 가지고 있다`는 거예요. `광해`의 하선도 결국 사람이 바뀐 게 아니라 그 인물에게서 못 봤던 걸 보여준 거죠. 나쁜 사람이라도 착한 면이 있다는 결론은 이런 생각에서 나온 겁니다."

그가 사람에 대한 선량함을 기본적으로 깔고 있는 데는 신학을 공부한 데서도 비롯됐다. 집안에 목회 일을 하는 형이 두 명이나 있을 만큼 종교적인 집에서 태어나 신학을 공부하다가 그만두었지만 그것이 지금 쓰는 시나리오에 영향을 끼친다는 설명이다.

"평소에 남들보다 영화를 많이 보지도, 책을 많이 읽지도 않아요. `광해` 준비할 때도 가장 도움이 됐던 게 20권짜리 만화 조선왕조실록이었죠(웃음). 하지만 대학 때 신학 공부를 하면서 사람에 대한 고민을 한 게 아직도 작품에 영향을 많이 끼치는 것 같습니다."

최근 그는 판타지 영화 `권법`과 `팔란티어` 각색작업을 하는 동시에 드라마 준비도 하고 있다.

"얼마 전 드라마 한 편을 계약했는데 영화 시나리오 쓰면서 10년간 벌었던 돈을 한 번에 주더라고요. 이런 맛을 한 번 보면 후배들이 여기서 버틸 수 있을까 싶었어요."

그는 영화계에서 작가 인식 개선을 하기 위해 표준계약서 사용을 공론화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얼마를 받느냐는 작가를 평가하는 실질적인 기준이잖아요. 드라마에서는 `김수현` 드라마, 이런 식으로 작가 이름이 있지만 영화에서는 `올드보이 작가`처럼 작품으로 불립니다. 인식 차이가 처우 차이인 거죠. 시나리오 작가가 감독이 되기 위한 단계가 아니라 하나의 창작자로서의 자리가 됐으면 합니다."


매일경제 MK뉴스 - 글 : 김지아 / 사진 : 이승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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