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홍리의 스파이> - 정해민



2010 대한민국 스토리 공모대전 우수상 수상,
시나리오 작업 중인 <좌홍리의 스파이>의 정해민 작가


시나리오를 선정해 상금만 주는 시나리오 공모전의 시대는 갔다. 최근 기획개발지원 사업이나 시나리오 공모전의 경향을 꼽으라면 수상작에 창작공간을 지원하고 전담 멘토를 붙여 시나리오 작업을 도와준다는 것이다. 올해로 세 번째를 맞는 ‘2011 대한민국 스토리 공모대전’(주최 한국콘텐츠진흥원) 역시 마찬가지다. 영화뿐만 아니라 드라마, 게임, 애니메이션, 만화 등 다양한 원천 콘텐츠를 발굴해 지원하는 이 공모전은 규모로는 단연 국내 최고다. 대상 상금 1억원을 비롯해 최우수상에는 5천만원을, 15편을 선정하는 우수상에는 2천만원의 상금을 각각 지급한다. 선정된 작가들에게는 목동 방송회관 내 스토리창작센터의 작업 공간이 제공된다. 올해도 대한민국 스토리 공모대전이 열린다(자세한 사항은 한국콘텐츠진흥원 홈페이지 www.kocca.kr을 참조할 것. 공모전 접수는 9월 말 홈페이지 story.kocca.kr을 통해 할 수 있다). 지난해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수상한 <좌홍리의 스파이>의 정해민 작가를 창작지원센터에서 만나 이번 공모전과 현재 하고 있는 작업에 관해 물었다.

방이 넓다.

이래 봬도 창작공간에서 가장 큰 방이다. 원래 이 방이 아니었는데 어찌어찌하여 큰 방으로 흘러들어왔다. 대상 수상자는 저 끝에 있고.

작업하기 좋을 것 같다.

시원해서 좋다. 오늘 인터뷰만 아니면 집에서 쓰려고 했는데 날이 하도 더워서 왔다. 이번 기회가 아니면 내가 언제 국가 기관으로부터 녹을 받겠나.

여기서 잠도 자고 밥도 먹나.

가끔 자는데 밤에는 빌딩숲이라 그런지 꽤 무섭다. 사무실이 많아서 밥은 근처에서 주로 해결한다.

83년생으로 올해 29살이다. 이른 나이에 시나리오 공모전에 당선됐다.

문예창작과에서 소설을 전공했다. 일찍부터 이것저것 손댄 게 많다. 시나리오는 4편, 단편소설은 10편 정도 썼다. 많이 썼다고? 그런 건 아니고.

지난해 12월에 입상한 <좌홍리의 스파이> 시나리오도 학생 때 쓴 건가.

그렇다. 대학교 3학년 때인 2009년, 13페이지짜리 단편소설을 쓰는 수업이 있었다. 그때 <좌홍리의 스파이>를 썼더니 교수님께서 “야, 이거 재미있다. 중편이나 장편으로 한번 키워봐라”고 하시더라. 그 선생님은 내가 이 이야기를 소설공모전에 낸 줄 아시지만…. (웃음) 공모전에 낸 형식이 소설이긴 했다. 선생님의 가르침에 크게 벗어나지 않은 일탈이라고 생각한다.

<좌홍리의 스파이>는 ‘좌홍리’라는 시골 마을에 들어와서 살게 된 한 간첩의 생활과 그를 지켜주려는 마을 사람들을 코믹하게 그리는 이야기다. 어떻게 구상하게 됐나.

처음에는 지금처럼 휴먼코미디로 풀려고 하기보다 007 시리즈처럼 스파이 장르를 그리고 싶었다. 사실 간첩과 스파이는 어감이 많이 다른 것 같다. 아무래도 간첩이라는 말은 대한민국 사회에서 통용되는 단어다. 왜 한국에는 스파이물이 없을까라는 생각이 든 것도 그때다. 사실 <쉬리>나 <이중간첩> 말고는 마땅히 떠오르는 게 없지 않나. 그런데 쓰면서 나도 ‘간첩’이라는 말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고,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스파이물에서 간첩을 소재로 한 이야기로 바뀌게 됐다.

이야기의 배경인 ‘좌홍리’는 실제 존재하는 마을이라고.

그렇다. 충남 부여군에 있는 마을로, 부모님께서 살고 계시는 고향이다. 원래는 앉을 ‘좌’자인데, 왼 ‘좌’자로 바꾸었다. ‘좌파’ 할 때 그 ‘좌’자다.

원안을 쓰는 데 얼마나 걸렸나.

두달 정도 걸렸다. 애초의 13페이지짜리 단편소설 버전에서 살을 더 붙여서 60페이지 분량으로 늘렸다. 낮에는 밭을 갈고 밤에 글을 썼다. 대학을 졸업한 뒤 취직을 못해서 고향에 내려갔다. 거기서 고추 농사를 지었는데 도저히 농사일이 체질에 맞지 않더라. 할 줄 아는 게 글쓰기가 유일하니까. 우연히 공모전 소식을 듣고 틈틈이 썼다.

단편소설에서 시나리오 공모전에 낸 원안까지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건 뭔가.

13페이지짜리 단편소설은 인물의 처음과 끝이 정해져 있다. 주인공 이외에 다른 인물을 설정해 그 인물의 스토리라인을 이야기 안에 녹이는 과정이 어려웠다. 인물이 늘어나면서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생각해야 할 게 많아지더라.

심사위원들은 왜 이 작품을 선정했다고 하던가.

배경과 인물 설정이 풍부해서 지금 있는 사건 말고도 전개할 수 있는 줄기가 다양하다고 말씀하시더라.

창작공간에서의 하루 일과가 어떻게 되나.

출근 시간을 피해서 오전 11시쯤 도착한다. 점심 먹고 바로 작업한다. 계속 앉아서 작업할 것 같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게 인간 아닌가. 창작공간에서 함께하는 다른 작가들과 친하게 지낸다. 가끔 밤에 술도 함께 마시고.

동료 작가들과 서로의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나누는 편인가.

그렇다. 서로 모니터링도 해주고. 모두 나보다 선배라 그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뼈가 되고 살이 된다. 어떤 말이 와닿냐고? 빨리 드라마 쓰라고. (웃음) 아무래도 영화 시나리오가 어려우니까.

스토리 공모전의 사후 관리 일환으로 현재 차승재 대표와 함께 시나리오를 진행하고 있다.

차승재 대표님께서 7월까지는 초고를 쓰도록 내버려두셨다.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보라’고 하시더라. 초고를 드린 8월부터 차 대표님을 매주 뵙고 있다. 이번에 대학원에 입학했는데 차 대표님께서 지도 교수님이시다.

차승재 대표는 어떤 방식으로 멘토 역할을 하나.

이번이 나의 첫 시나리오 작업이라 차승재 대표님께 질문 드리는 게 많다. 어떤 부분이 막혔는데 길을 못 찾겠다고 말씀드리면 차 대표님은 그것에 대한 팁을 던져주신다. 그걸 가지고 일주일 동안 쓴 뒤 다시 보여드리고.

팁이 많이 도움이 되나.

큰 영감을 준다. 헤매는 시간에 다른 길로 갈 수 있어서 당장 어떻게든 해결이 된다. 그러다가 또 길이 막히면 또 다른 길을 찾아서 써내려가고. 주인공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다른 작품과 달리 <좌홍리의 스파이>는 여러 명이 등장한다. 이 사람들을 하나의 상황에 몰아넣고 싶은데 마음대로 잘 안된다고 말했더니 차 대표님께서 한마디 하셨다. ‘그건 네가 공력이 달려서 그런 거야’라고. (웃음) 차 대표님 역시 내가 시작 단계라 한꺼번에 많은 걸 바라기보다 하나하나 가르치는 방향에 초점을 맞추시는 것 같다.

공모전에 당선된 원안을 본 차승재 대표의 반응은 뭐였나.

주인공이 매력이 없다고 하시더라. 그건 큰 문제인데…. 처음 그 말씀을 하셨을 때 무슨 말인지 전혀 이해를 하지 못했다. 차 대표님께서 다시 말씀하시더라. ‘어떤 배우가 이 역할의 어떤 매력에 연기를 하려고 할까’라고. 배우가 이 역할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써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실 <좌홍리의 스파이>의 주인공은 자기 주관이 별로 없고 마을 사람들에게 휘둘리는 역할이다. 말은 쉽지만 그게 어디 쉽게 써지나. (웃음)

지금 몇고 정도 나왔나.

몇고라고까지 말할 건 없다. 이제 초고가 나오는 단계일 뿐이다.

작업할 때 다른 영화를 참고하는 편인가.

간첩이 소재다 보니 간첩영화는 다 찾아봤다. 가장 재미있게 본 영화는 장진 감독의 <간첩 리철진>이었다. <좌홍리의 스파이>와 코드가 비슷해서 최대한 다르게 쓰려고 노력하고 있다. 장훈 감독의 <의형제>도 많은 도움이 되었고. 인물이 많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록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도 참고했다. 한 사건에 8명을 몰아넣는 게 아주 기가 막히더라.

창작공간에서 작업하면서 느끼는 건 뭔가.

작업에만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좋다. 물론 집에서도 잘 쓴다. 그런데 할머니 집에 얹혀살다보니 작업을 하다가 빨래도 널어야 하고, 슈퍼마켓에 심부름도 다녀와야 한다. 그런데 창작공간에서 작업하면서부터 오로지 글쓰기에만 집중하고 있다.

앞으로의 계획은.

‘2011 대한민국 스토리 공모대전’ 3기가 선발될 때까지 창작공간에서 계속 작업할 예정이다. 한 2~3개월 남았나. 그때까지는 초고를 완성하는 게 목표다. 압박감을 느끼냐고? 압박감보다는 아쉽다. 언제 하루 종일 에어컨 바람 쐬면서 작업하겠나. (웃음)


씨네 21 - 글 : 김성훈 / 사진 : 최성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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