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악독한 작가였다 - 박훈정



<혈투>로 감독 데뷔한 <악마를 보았다> <부당거래>의 시나리오작가 박훈정

<악마를 보았다>를 촬영 중이던 김지운 감독이 <부당거래>를 준비 중이던 류승완 감독에게 문자를 보냈다. “박훈정 작가가 우리 두 사람을 먹여살리는 거 같아.” 두 대표감독이 만든 두편의 화제작은 시나리오를 쓴 장본인의 정체를 궁금하게 만들었다. 정작 박훈정 작가는 뜻하지 않은 유명세에 “별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성격이 좀 둔한 편이다. (웃음) 어찌 됐든 영화는 감독의 작품이니 작가가 언급되는 게 좋을 것 같지 않더라. 그래서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런데 결국 그가 언급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돼버렸다. <악마를 보았다> <부당거래>와 비슷한 시기에 준비했던 본인의 감독 데뷔작 <혈투>가 개봉을 앞둔 것이다. 신인감독 박훈정을 만나는 김에 시나리오작가인 박훈정에 대해서도 물었다. 최근의 안타까운 사건 때문에라도 시나리오작가인 그와의 만남이 좀더 중요했다.

개봉 전부터 <악마를 보았다>와 <부당거래>로 이름이 알려졌다. <혈투>도 다른 감독이 연출하려던 작품은 아니었나.

<혈투>는 내가 연출을 하고 싶었다. <악마를 보았다>와 <부당거래>가 2008년 즈음에 쓴 건데, <혈투>는 2006년에 써놓은 작품이다. 사실 <혈투>도 다른 제작사와 감독님들에게 돌렸던 시나리오인데, 다들 이야기의 기본적인 뼈대만 살리고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더라. 내 의도와는 거리가 먼 느낌이어서 죽으나 사나 내가 찍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처음의 아이디어는 뭐였나.

귀향병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패전하고 돌아오는 귀향병인데, 돌아올 수 없는 이유가 있는 거다. 처음부터 저예산 사극을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에 객잔이라는 한정된 공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등장인물의 삼각구도를 생각했다. <부당거래>도 그렇지만 삼각구도를 좋아하는 편이다. 제일 안정적이고 물고 물리는 관계로 몰고 가기에 좋다. 가위바위보 게임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처음부터 저예산을 생각했던 이유는 신인감독이라는 포지션 때문이었나. 아니면 영화적 의도 때문이었나.

두 가지 이유가 다 있었다. 신인감독의 첫 작품인 만큼 위험부담을 줄이자는 의도도 있었고, 세 사람으로 대표되는 계급의 갈등을 한 공간에서 다 소화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굳이 밖으로 끌어내는 게 불필요해 보였다.

고창석이 연기한 두수라는 캐릭터가 가장 눈에 띄었다.

천민계급인 두수는 자신과 상관없는 권력싸움으로부터 가장 큰 피해를 볼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다. 도영(진구)이 주류에서 비주류로 전락한 인물이고, 헌명(박희순)은 주류가 되기 위해 평생 발버둥치는 인물이다. 도영과 헌명이 싸우면 결국 어느 한쪽은 권력을 얻게 되겠지만 두수는 그저 피해자일 뿐이다. 이 싸움에서는 가장 정치적인 인물이 살아남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악마를 보았다>와 <부당거래> 때도 그랬지만 영화적 판타지는 별로 없다. 그것 때문에 관객이 싫어하고 불편하기도 할 것 같다.

시나리오 단계와 비교했을 때 수정된 부분이 있었나.

완고된 시나리오에는 미스터리적인 부분이 있었다. 그리고 시체들이 하는 일들이 있었다. 헌명이 시력을 잃게 되는데 칼을 찾을 때마다 시체들이 칼을 집어주는 식이었다. (웃음) 완고대로 찍었으면 잔재미는 더 많았을지 모르지만,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하려면 정공법으로 가야 한다고 판단했다.

첫 영화 연출인데 힘든 점이 있었다면.

촬영은 힘들지 않았다. 같이 작업한 스탭이나 배우가 모두 베테랑이라 정말 편하게 찍었다. 가장 힘든 건 <혈투>를 만드는 동안 쓰고 싶은 시나리오를 쓰지 못했다는 거다. 처음에는 촬영을 24시간 하는 것도 아니니까, 쓸 수 있겠다 싶었다. 평소 생각이 나면 일단 뭐가 됐든 막 쓰는 스타일인데, 도저히 시간이 나지 않더라.

혹시 <악마를 보았다>와 <부당거래> 중 연출하고 싶은 작품은 없었나.

없었다. 시나리오를 써놓고는 우리나라에서 누가 이 작품을 제일 잘 찍을 수 있을까를 먼저 생각했다. 그래서 제작사쪽으로 돌리기보다는 아는 감독들님한테 먼저 보여주려고 했다. 나는 내가 잘할 수 있는 것만 연출하고 싶다. 특히 <악마를 보았다> 같은 작품은 정말 연출하기 어려웠을 거다.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이 안 믿는데, 솔직히 잔인한 영화를 잘 못 본다. (웃음) 두 작품 모두 운 좋게도 임자를 잘 만난 거다.

시나리오작가로서 <부당거래>를 쓰게 된 계기가 있었나.

감일산에서 초등학생 납치사건이 있었다. 뉴스를 보는 입장에서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이 재밌더라. 그때 경찰은 이런저런 이유로 범인을 잡기 힘든 상황이라고 발표했다. 그런데 며칠 뒤 대통령이 경찰서를 방문해서 빨리 범인을 잡으라고 하니까, 정말 며칠 만에 잡아내는 거다. 이게 가능할까 생각했다. 난 오히려 범인을 잡기가 힘든 상황이라고 털어놓는 경찰의 말을 더 신뢰했었다. (웃음) 성향이 삐딱해서 그런지 저 범인이 과연 진범일까? 그런 상상을 해봤다. 물론 그는 진범이겠지. (웃음)

영화화된 <부당거래>에서는 가짜로 내세운 범인이 결국 진범으로 밝혀진다. 시나리오 단계에서 있었던 반전이었나.

반전을 의도하고 쓴 부분은 아니었다. 코미디의 진수를 보여주고 싶었다. 능력있는 경찰, 검찰, 언론이 진범을 잡아놓고 쇼를 했다는 거지. 시나리오와 영화는 크게 두 가지 부분에서 다르다. 우선 시나리오에서는 철기가 데리고 있는 부하들이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결말이 다르다. 철기가 죽지 않고 계속 또 다른 부당거래를 한다는 설정이었다. 가짜 범인이 진범으로 드러나는 것 자체가 철기에게는 죽음보다 더한 치욕이라고 생각했다.

<악마를 보았다>를 쓰게 된 배경도 궁금하다.

<부당거래>에서 연쇄살인범 이동섭의 이야기만 떼어서 만든 것이다. <부당거래>의 첫신을 먼저 써놓고 나서 <악마를 보았다>의 시나리오를 썼었다. <악마를 보았다>는 써놓고 나서 몸이 힘들었던 작품이다. 선량한 주인공이 복수를 하면서 무너지는 과정을 계속 봐야 하니까. 불가항력적이라는 면에서 관객이 불쾌감을 느꼈을 것 같다.

세 작품 이전의 정보가 거의 없다. 언제부터 시나리오작가가 되겠다고 생각했나.

영화는 고등학생 때부터 좋아했다. 누구나 그렇듯이 처음에는 나도 감독이 되고 싶었다. 그때는 시나리오 작법을 공부하는 것도 어려웠던 때다. 대학로 동숭아트센터 지하에 있던 ‘키노’가 유일한 도서관이었다. 그때 <한국 시나리오 전집>이라고 영화 시나리오가 책으로 묶여 나온 게 있었다. 시나리오 작법서는 1960년대 일본 드라마작가들이 쓴, 말도 안되는 것밖에 없었다. 결국 영화를 많이 보는 게 영화 공부의 전부였던 것 같다. 영화를 보고는 시나리오로 옮겨 쓰는 연습을 많이 했었다.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였나.

성적에 맞춰 대학에 가느라 영화랑 상관없는 자연계 학과로 진학했었다. 그러고는 중간에 군대를 갔는데, 이때 말뚝을 박았다. (웃음) 부사관에 지원해서 5년 뒤에 중사로 제대를 했는데, 군 휴학을 5년씩이나 했으니 대학은 자연스럽게 중퇴가 된 거다. 제대할 즈음에 벤처협회에서 연 게임 시나리오 공모전에 참가했는데, 이때 당선돼서 게임회사에 특채로 들어갔다. 그런데 그 회사가 사업 아이템을 다른 걸로 바꾸는 바람에 함께 일하던 사람들이랑 또 다른 게임회사를 차렸고, 이 회사를 아주 알차게 말아먹었다. (웃음) 그러던 와중에 당시 싸이더스HQ가 주최한 시놉시스 공모전에 당선됐다. 말하자면 그때부터 영화계에 진출한 거다.

그 이후로는 과정이 순탄치 않았을 것 같은데.

초반에는 ‘정상적인’ 제작자나 프로듀서를 만나기가 정말 어려웠다. 정말 이상한 사람들이 많았다. (웃음) 예를 들어 어떤 영화사에 2년 동안 있으면서 8, 9편의 작품을 쓰거나 각색했는데, 받은 돈이라고는 300만원뿐이었다. 영화계에 있으면 못 살겠더라. 그래서 만화 스토리작가로도 일했었다. 무협만화의 스토리를 많이 썼다. 만화쪽이 영화보다 돈을 많이 주는 곳은 아니지만 지급일을 어기거나 약속했던 금액을 후려치는 일은 전혀 없었다. 그래도 영화쪽 일은 계속 하고 싶더라. 시간이 지나면서 영화계에도 좋은 분들이 많아졌다는 걸 알게 됐다. 내가 겪었던 분들은 어느 순간 퇴출되고, 정상적인 시스템을 마련하려는 분들이 생겨나고 있었다.

<악마를 보았다> 이전에 계약 단계까지의 작품은 몇편 정도 있나. 어떤 장르의 작품인가.

4편 정도 있다. 아직 제작에 안 들어갔다. 스릴러, 휴먼코미디, 시한폭탄이 나오는 폭탄스릴러 등이다. 조선의 마지막 호랑이를 다룬 휴먼드라마도 있다. 장르는 다양한데, 로맨틱코미디와 멜로는 정말 못 쓴다.

고 최고은 작가의 죽음이 시나리오작가에 대한 처우문제를 환기시켰다. 앞서 쓴 작품들의 대우는 어땠나.

<악마를 보았다>는 정말 좋은 대우를 받았다. 할리우드 수준은 아니겠지만 정말 괜찮았던 것 같다. <부당거래>는 통상적인 계약이었다. 나머지도 마찬가지다. 그나마 나는 무명 시절부터 계약을 까다롭게 했던 경우다. 요구사항이 많아서 제작사들 사이에 악명이 높은 작가였다.

어떤 계약을 했기에.

얼마 전에 영화아카데미에서도 이야기했던 건데, 일단 투자를 받은 뒤에 잔금을 주겠다고 하는 계약은 절대 안 했다. 말이 안되는 계약이다. 차라리 돈을 많이 못 주겠다고 하면 이해한다. 그때는 나눠서 주지 말고 한번에 개런티를 주고 가져가서 열심히 만들어달라고 하면 된다. 영화계가 어려우니까 고통을 감수하자는 분도 있다. 그러면 고통을 감수할 테니, 만약 영화가 흥행되면 러닝개런티를 달라고 했다. 고통은 감수하자고 하면서, 이익은 나누지 않는 것도 말이 안되지 않나. 2, 3년간의 제작기한도 명시했다. 보통 기한을 명시하지 않아서, 제작은 미뤄지고 돈도 못 받는 경우가 많다. 의외로 이런 요구사항을 받아들이는 제작사가 많다. 굳이 요구를 안 하니까 제작사도 먼저 챙겨주려 하지 않는 거다. 작가 입장에서 세게 나가라는 게 아니라 괜히 저자세일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다. 어떤 제작사도 시간이 남아돌아서 아무 시나리오작가나 불러다 이야기를 해보자고 하지는 않는다. 어느 정도는 제작할 마음이 있으니까 작가를 만나려고 하는 거다. 나에 대해 안 좋게 생각하는 제작자분들이 있기는 한데, 결국 자기 밥그릇은 자기가 챙겨야 하는 것 같다.

롤모델로 삼은 감독, 작가 등이 있나.

롤모델까지는 아니고 봉준호, 박찬욱, 김지운 감독님을 닮고는 싶다. 물론 아직은 준비가 많이 미흡하다. 나름 사회참여적인 영화를 하고 싶다는 마음은 있다. 사람들이 굳이 알려고 들지는 않지만 사회에 만연해 있는 이야기를 하려 했고, <혈투>도 그런 선상에 놓인 작품이다.

시나리오작가에서 감독으로 데뷔했다. 앞으로 어떻게 활동하고 싶나. 감독으로만 활동할 생각인가.

여전히 쓰고 싶은 작품이 많은데, 그중에서 어떤 작품은 좋은 감독님과 만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는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만 연출할 생각이다. 만약 10편의 시나리오를 쓴다면 7, 8편은 다른 감독님과 하고 싶다. 감독으로서는 이제 좀더 가볍고 통쾌하고 유쾌한 영화를 해볼까 한다. 지금까지 쓴 작품 중에 그런 영화가 없었던 건 아닌데 제작된 영화가 다들 너무 어두워서…. (웃음)


씨네 21 - 글 : 강병진 / 정리 : 신두영 사진 : 손홍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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