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직비디오에서의 작가의 역할 - 방송작가 김영찬
뮤직 비디오의 시나리오를 쓰게 된 계기는 아주 우연이었다. 3년전 '할렐루야' 라는 영화 시나리오를 쓰고 개봉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당시 그 영화 음악을 담당했던 신철 사장이 갑자기 만나자고 하더니 이색 제안을 해 온 것이다. 신철 사장은 가수 유승준의 음반을 제작하고 있었는데 '첨밀밀' 이라는 홍콩 영화를 보고 감동을 받았다며 유승준의 뮤직 비디오를 그렇게 영화처럼 만들어 줄 수 있겠냐는 것이었다. 호기심이 많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교양, 쇼, 코미디, 드라마, 영화 등 각종 장르에 도전해 봤던 나였기에 이 제안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단막극 한 편을 쓴다는 각오로 작업에 들어갔는데 그 때까지 우리나라 음반 업계에서는 뮤직 비디오는 가수들이 음악에 맞춰 입만 뻥긋 하는 Lips Inc 가 대부분이었고 스토리 텔링으로 찍는다고 해봤자 가사에 "쓸쓸히 빗속을 걷네" 하면 실제로 모델이 비를 맞으며 길을 걷는 수준으로 찍던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 당시만 해도 전문 드라마 작가가 뮤직 비디오 콘티 작업에 참여한 경우는 전무했었고 대부분 뮤직 비디오 감독들이 연출부들과 회의를 하면서 노래의 이미지에 맞는 영상을 꾸미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우선, 노래를 들어 보니 미디엄 템포의 댄스곡이었다. 웬지 '첨밀밀' 하고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리고 가수의 얼굴을 떠올려 보았다. 유승준... 강인한 그의 이미지가 역시 '첨밀밀' 에 나오는 여명의 순박함과는 거리가 있었다. 나는 스토리를 원점으로 돌려놓고 노래와 가수에 맞는 컨셉을 새로 잡아 대본 작업에 들어갔다. 스토리를 짜고, 캐릭터를 잡고, 영상을 구성하고... 거의 드라마 한 편을 쓰는 것과 똑같은 에너지가 소비되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거시 최근에 인기를 끌고 있는 '영화 같은 뮤직 비디오' 의 효시, 유승준의 '나나나' 이다. 이 뮤직 비디오는 업계에 큰 반응을 불러 일으켰고 이를 보고 나를 찾아 온 다른 제작자에게 써준 두 번째 작품, 조성모의 'To Heaven' 은 그야말로 메가톤급 히트를 불러왔다. 신인가수라는 핸디캡을 극복하기 위해 가수는 등장시키지 않고 배우들만으로 한 편의 드라마처럼 만든 것이 빅 히트가 된 것이다.

이후로, 조성모의 '불멸의 사랑', '슬픈 영혼식', '가시나무', '아시나요' 를 비롯해 스카이의 '영원', 포지션의 '블루 데이', 서태지의 '울트라맨이야' 까지 참 많은 편수의 뮤직 비디오를 쓰면서 덕분에 세계 각 국을 돌며 여행도 많이 했다. 조성모의 'To Heaven' 을 만들었을 때는 모 방송국의 유명하신 드라마 감독님께서 그렇게 좋은 스토리가 있으면 자기한테 갖고 와서 드라마나 영화로 하자고 할 것이지 왜 뮤직비디오에 썼냐며 안타까워하셨다. 하지만 아무리 뮤직 비디오라고 해서 아이템을 아낄 순 없었다. 당시 신창원의 도주 행각에서 힌트를 얻었던 'To Heaven' 도 그렇고, 스카이의 '영원' 같은 경우엔 정말로 내가 갖고 있는 영화 시나리오를 뮤직비디오로 과감하게 바꾼 경우였고 지금도 영화화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많이 남는 작품이다. 이제는 거창하게 뮤직 비디오를 찍지 않으면 가수가 새 음반을 발표한 티가 안 난다고 음반 제작자들은 투덜대는데 뮤직 비디오가 엄연히 중요한 음반 홍보 마케팅 전략이 되었고 음반 판매량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증거라 할 수 있다. 간혹 뮤직 비디오 대본을 써 줬는데 일부분만 채택이 되었다는 이유로 원고료를 못 받았다며 상의를 해 오는 후배 작가들도 있다.

이제는 뮤직 비디오도 엄연히 우리 작가들이 참여할 수 있는 하나의 장르이기에 그런 식으로 '품만 팔고 녹은 못 받는' 부당한 대우는 받아서는 안 된다. 혹자는 나를 '뮤직비디오 작가' 라고 놀리기도 한다. 하지만 난 여전히 지금도 드라마와 영화를 쓰고 있고 뮤직비디오 역시 그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기에 부끄럽지 않다. 다만 내가 쓰는 드라마나 영화가 내 뮤직 비디오처럼 '대박' 이 터지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글:방송작가-김영찬>
KBS-TV <굿모닝 영동> <파파> <느낌> <싱싱 손자병법>
영화 <할렐루야> <찜>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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