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할 수 있는 이야기, 겁내지 않고 최선을 다한다 -심재명/이은 [1] [2]
10월4일 흐린 수요일 오후. 명륜동 한 골목 안 기왓집에 참하게 들어앉은 명필름의 댓돌은 객들이 벗어놓은 신으로 북적거렸다. 지난 9월26일 있었던 JSA 전우회의 난폭한 방문이 남긴 흔적이 아직 다 가시지 않은 명필름 이곳저곳은 인터뷰를 청해 방문한 손님들을 각자 응대하는 <공동경비구역 JSA>의 제작자, 감독, 배우들의 목소리로 수런거리고 있었다. <씨네21>은 그 조용하지만 유쾌한 분주함 속에서 10월20일경일 거라 짐작되는 서울관객 200만 돌파 이벤트 아이디어를 슬슬 의논하기 시작한 이은 감독, 심재명 대표를 만났다. 담담한 말 끝에서는 스스럼없는 자부심이 종종 우러나왔고, 두 사람은 매일 들을 법한 상대의 견해를 인터뷰 내내 처음 듣는 듯 경청했다.


<공동경비구역 JSA>의 성공은 예상했던 것인가. 이만한 크기의 성공은 짐작했나. <…JSA>를 기획의 승리라고 보는 견해에 대해 '결코 아니'라고 말하곤 했는데 어떤 점에서 그렇게 생각하나.

심재명 : 워낙 제작비 규모가 커 목표는 손익분기점인 서울관객 50만 동원이었다. 그 이상의 대박영화가 될 것이라고는 이상은 예상 못했다. <접속>은 그래도 한석규라는 검증된 스타가 있었지만 <…JSA>는 출발 당시 "된다"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달리 준비된 작품이 없는 막막한 상태에서 원작 소설을 접했다. 나름대로는 소설의 재구성에 문제가 있을 거라는 생각은 했지만, 젊은 작가가 분단현실을 똑바로 바라본 소설이라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흥행 가능성보다는 하고 싶다는 마음에 집중했다. 기획이나 마케팅이 빛난 작품은 아니라고 보기에 '잘 짜인 기획영화'라는 시각에는 이견을 달고 싶다. 6·15남북정상회담 훨씬 전에 제작이 시작된 것이기 때문에 사실 무모한 시도였다. 기획의 승리라는 것은 결과론이다.


의미도 있었겠지만 어느 정도의 상업적 가능성도 읽었기에 제작을 결정했을 듯하다. 원작을 보고 영화화하겠다는 생각을 한 건 이은 감독이라고 들었는데, 어디에서 가능성을 봤는가.

심재명 : 나는 이은 감독과 달리 영화의 사회적 기능 같은 문제에 대해서는 크게 생각하지 않고 살아왔다. 영화나 내가 했던 모든 일은 개인적인 것에서 출발했다. 그런데 소설 의 느낌은 조건 반사였다. 책을 덮었을 때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고 수십년 동안 받아온 반공 이데올로기에 의해 결국 총을 쏠 수밖에 없고 자살하는 과정, 주제가 던질 충격이 아주 영화적으로 다가왔다. 영화적 느낌이 시나리오에 녹아들고 잘 만들어진다면 해볼 만했다. 그리고 명필름 전 직원이 소설을 읽고 감동을 표했다. 이 이야기는 우리가 해야 된다는 공감이 있었던 셈이다. 장르 영화적으로 풀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있었다.

이은 : 올해 1월까지는 명필름의 대표로서 조직의 강화와 가동, 경영의 측면을 최우선으로 만사를 결정했다. <…JSA>의 경우는 아무런 차기작 계획이 없는 상태에서 무엇인가 시도할 시기였고 자신감도 있었다. 우리에게는 특별히 거창한 목적이 없다. 좋은 영화 만드는 것과 먹고사는 것, 두 가지다. <…JSA>는 의미부여라는 차원에서 욕심을 낼 수 있었던 영화였고, 심 대표가 그것을 선배 프로듀서로서 뛰어난 예측력과 통찰력으로 마케팅면에서 조심스럽게 검증해준 것이다.


박찬욱 감독을 적당한 연출자라고 본 까닭은 무엇인가.

심재명 : 운이 맞아 떨어졌다. 먼저 박 감독이 5, 6편의 트리트먼트를 갖고 심보경 이사를 통해 우리와 접촉했다. 물론 전부터 안면도 있고 <달은 해가 꾸는 꿈> <삼인조>도 봤지만, 정말 준비가 된 감독, 구체적으로 할 이야기가 있는 감독이라는 점에 놀랐다. 박찬욱 감독의 시나리오는 우리가 만들 자신이 없어 정중하게 거절했지만, 그처럼 구체적인 신뢰를 갖게 된 시점에 연출 제의를 흔쾌히 받아들여 줘서 함께하게 됐다.


순제작비가 30억원에 육박한다. 명필름 영화 가운데 최고 제작비인데, 한국형 블록버스터로서 가능성이 있다고 본 것인가.

심재명 : 제작비가 만만찮게 들 것이라는 생각은 했지만 소설을 읽으면서는 그렇게 많이 들지는 몰랐다. 본격적인 제작에 들어가면서부터 30억짜리 블록버스터 수준의 예산이 나온 것이다. 판문점도 돌아오지 않는 다리도, 비슷한 장소를 열심히 찾았는 데 결국 실패해서 세트를 지은 거다. 일단 영화화를 결정했으니까 제작비를 줄이려고 리얼리티를 손상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고, 최대한 합리적으로 제작비를 쓰자고 결정했다.


결과적으로 어쩔 수 없이 <쉬리>랑 비교하게 되는데, 스타 파워면에서 보면 <…JSA>가 확실히 열세다. 캐스팅 당시 마음을 푹 놓을 수 있는 스타도 아니었고 좀 모험적인 캐스팅인데 이 진용으로 가도 가능성 있겠다고 판단한 대목은.

심재명 : 현재 캐스트로 가기 전에 거절한 배우들도 있었다. 자랑은 아니지만 명은 이미 자리잡은 감독, 됐던 배우와 일한 적은 없다. 그것이 어느 정도 스타 시스템을 믿는 여타 제작사와 다른 우리의 캐릭터다. <접속>의 한석규 정도가 예외다. 차선을 항상 최선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스타성이나 세간의 인기보다는 영화 캐릭터에 적합한가, 시나리오를 보고 얼마나 애정과 성실성을 갖고 캐릭터를 구현할 수 있는가. 적극성, 자세 이런 요소에 방점을 찍는다. <접속> 때도 전도연을 두고 한석규에 걸맞지 않는 상대라는 말들이 있지만 연기자로서 가능성을 믿었다. <…JSA>의 배우들도 촬영이 진행되고 러시가 나오면서 잘한 판단이었다는 믿음이 조금씩 제고됐다.


<…JSA> 마케팅의 초점은 무엇이었나. 전면에 내세우는 일을 은근히 금기시하던 분단 문제나 군인이라는 소재를 피하거나 돌려서 말하지 않은 점이 특이했는데.

심재명 : 우리는 정면돌파가 가장 현명한 방법이고 마케팅은 항상 공격적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소재나 주제에는 위험한 요소들이 있으므로 숨길 건 숨기고 부각시킬 건 부각시켜야 하지만, 약점으로 보이는 것이 의외로 강점일 수도 있다고 본다. 코믹잔혹극 <조용한 가족>, 치정극 <해피엔드>의 경우처럼 감독의 영화에 대한 생각 안에는 마케터 입장에서 귀기울여볼 만한 정답이 있다. 진부하고 위험해 보이는 '치정극'이라는 말을 공격적으로 내세울 때 신선할 수 있다. <…JSA>는 분단 문제를 숨기다보면 아무 이야기도 안 된다고 봤다. 그것 말고는 내세울 게 없다. 우리 영화는 제목도 다 솔직하고 직설적인 것이 촌스럽지 않은가? '공동경비구역'이라니… (웃음) 마케팅은 특별히 잘한 게 없고 잘했다면 영화 만든 사람 스스로 확실한 자신감을 갖고 3주 전부터 매스컴과 관계자들에게 빨리 보여주어 영화의 힘이 빨리 인지되고 전파되고 확산되게 했다는 것뿐이다.


사람들이 <…JSA> 이후 명필름의 행보를 궁금해한다. 강우석, 차승재, 강제규 3인방의 시대가 끝나고 명필름이 합류하는 4각 체제가 들어설 것이라는 예감도 있다. 투자사, 마케팅전문회사, 배우아카데미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소문도 있는데.

심재명 : 전혀 아니다. 이은 감독과 내가 느낀 것이라면 직원이 열다섯명이고 각자 프로듀서 노릇을 하는데 1년에 겨우 한편, 올해 처음으로 두편 만드는 제작편수가 다른 회사에 비해 너무 과작이라는 거다. 산업 내에서 명필름의 위치를 짚어볼 때 이건 너무 굼뜨고 조심스러운 게 아니냐는 생각에서 온전히 여기서 제작하지 않더라도 외부 프로듀서가 우리와 능동적인 관계 속에서 제작하는 시스템을 만들려고 한다. <패스워드>도 그런 경우다. 만약 그렇게 되면 그만한 편수를 현재 마케팅 팀원으로 소화 못하니까 거기에 맞는 방안을 생각해 보는 정도지 구체적인 확장 계획은 없다. 우리는 경영이나 비즈니스 마인드가 없다. 논의된 부분이 있다면 그나마 축적한 부가가치로 편수를 늘리고 효율성을 높여 더 큰 수익을 창출하도록 노력하는 정도다. 스타일이기도 하고 무리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과자 장사만 하면 잘 할 수 있는데 건설, 전자 벌리면서 나라 말아먹는다. 한 분야의 전문가가 전체적으로 부족하다는 생각이다. "당신은 이것의 전문가입니까" 물으면 똑바로 대답 못하면서도 일을 벌리는 것이 체질적으로 안 맞는다. 인터넷은 오프라인의 내용을 온라인상에서 잘 마케팅할 수 있는 내용을 채워가자 정도다. 그리고 해외 세일즈가 호기이기 때문에 해외 마케팅팀을 구성했다. <…JSA> 개봉 훨씬 전에 'DNDING(디엔딩) 닷 컴'이라는 법인을 만들었다. 전부터 알고 있는 광고대행·기획사와 함께 마련한 법인으로, 심보경 이사가 프로듀서로 일하고 있고 앞으로 젊은 세대를 타깃으로 삼은 영화는 그곳에서 만들 계획이다. 현재 인터넷으로 만난 남녀의 사랑을 그린 최호 감독의 프로젝트가 진행중이다.


<…JSA>로 인해 확실한 흥행사로 인지되고 있지만, 올해 칸과 베니스를 간 영화사이기도 하다. <섬>은 이은 감독의 프로젝트였는데 제작을 결정하기까지 두 사람 입장이 달랐다고 알고 있는데.

심재명 : 나는 생각이 좁아, 돈을 못 벌 거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조심스러웠다. <악어>나 <파란 대문>은 좋게 봤지만 직접 제작할 자신은 없었다. 감독의 연출 성향이 싫어서가 아니라 "그걸 우리가 해야 하나?"라는 측면에서 반대했는데 이은 감독은 적극적으로 하고 싶어했다. 지금 판단으로는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 <섬> 없이 <…JSA>를 했으면 '기획영화, 돈되는 영화에만 매달리는 영화사'로 인식됐을 거다. 또 <…JSA> 다음에 만들었으면 돈 벌었으니 쓰는구나 했겠지만 전에 했으니까 우리의 다양성에 힘을 실어준 영화가 된 듯해 고맙게 생각한다. 명필름에 다른 영역을 더해준 작품이랄까. 다양성에 있어서는 칭찬을 들어도 되지 않나 생각하고 있다. <코르셋> <접속> <조용한 가족> <해가 서쪽에서…>까지만 해도 만장일치가 되지 않으면 제작을 겁냈고 실패를 두려워하는 자세가 있었다. 하지만 <해피엔드> <섬> <…JSA>는 자신감에서 나오는 다채로움을 보여주는 영화들이다. 이은 감독, 심보경 이사, 내가 각자 하고 싶은 이야기에 손을 들어주는 것이다. 작품 선택이 무모해진 것이 아니라 각 프로듀서의 개성을 살리고 제작의 동기 부여에 있어 자율권을 부여하면서 서로 부축해주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섬> 이후 임순례 감독의 <와이키키 브러더스> 제작에도 마찬가지로 견해차가 있었다고 알고 있는데.

심재명 : 역시 돈을 못 벌 거라는 자신이 있었다. (웃음) 그러나 이은 감독은 한국영화 산업 안에서의 대안 영화를 고민한다.

이은 : 명필름에는 크레딧이 있고 그것을 안전하게 유지할 방법도 얼마든지 있다. 그런 상황에서 <섬>의 서울 3만명 관객은 명필름으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수치였고 심 대표에게는 충격이었다. 제작자에겐 책임이라는 것이 있는데 충분한 동의없는 상황에서 무작정 직원들 고생시킬 수는 없다고 문제제기를 하기도 했다. 그래서 충분히 서로 이해하면서 가자는 내용의 심각한 대화를 했고 지금은 정리가 됐다. (웃으며) 억울한 게 있다면 나는 <해피엔드>에 대한 심 대표의 확신을 믿어줬는데 그는 나를 왜 못 믿냐는 거였다. 불만 속에 용기 내서 밀어붙였고 한동안 굉장히 위험했다. <섬>도 안 좋은데 내가 제안한 <…JSA>도 잘 안되면 내부 발언권 사그러들고 폐인될 뻔했으니까. (웃음) 내게 있어 대안이란 감독의 개성이나 실험이 살아 있는 영화를 투자자의 돈을 깎아 먹지 않을 방도를 제작자가 마련해가면서 만드는 길을 생각하는 것이다. <섬>의 경우에도 새로운 수익분배 기준을 새롭게 만들며 제작했고, 그런 방식의 또다른 영화가 <와이키키 브라더스>다. 한 프로듀서가 제안할 때 다른 성원이 100% 동의했을 때만 '고' 한다면 다양함을 옥죄는 부분이 있다. 각자 개성에 맞는 프로젝트를 맡아 제작과 마케팅까지 책임지고 중요한 결정에는 이사회가 모여 합의제로 가는 식으로 가야 한다. <섬> <해피엔드> <…JSA>는 불협화음이 있으면서도 개성 중심으로 갔다. 앞으로는 서로의 결정에 대한 구조적 존중이 가능할 것이다.

심재명 : 나는 비겁하게도 <섬>이 결과적으로 인정을 받았기 때문에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훨씬 흔쾌히 제작하시라고 했다. (웃음) 물론 시나리오의 이야기에 공감하기도 했지만.


<섬>이 베니스 경쟁부문에 진출하고 해외에서 수익을 거두는 등 성과가 있었다. 해외영화제를 경험한 소감은 어떤 것인가. 명필름에 대한 기대는 한편으로 <…JSA>처럼 대박을 터트리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 <섬>이나 <와이키키 브러더스>같은 영화를 제작한다는 점에도 있는데 두 가지 축을 계속 끌고 갈 생각인가.

심재명 : 해외에서 가장 행복했던 한해다. 자부심 느끼는 건 이 성과가 하루아침에 얻은 결실이 아니라 꾸준히 일곱편의 영화를 만든 끝에 얻는 것이라는 점이다. 다양하고 새로운 영화를 지속적으로 많이 만드는 일에 자신감이 붙는다. 영화제에 가 보고는 영화제용 영화가 따로 있고, 상업영화, 작가 영화가 분리돼 있다는 기준이 틀렸다는 생각을 했다. <해피엔드> 같은 경우는 참 '고소했다.' 칸을 사대주의적으로 바라보진 않지만 칸영화제 진출작 중에 국내에서 흥행도 된 작품이 어디 있었나. <해피엔드>는 감독의 개성과 연출의도가 살아 있음에도 흥행이 잘 되다보니 그만 그런 면이 평가절하됐었는데, 영화제에서 나름의 보상을 받는 기분이었다. 요컨대, 상업성과 작품성에 양다리를 걸치는 것과는 다른 차원에서 자기가 만들고 싶은 영화를 '제대로' 잘 만들면 인정받을 수 있는 통로는 흥행, 작가적 성과, 영화제 등등 참으로 다양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이은 감독이 생각하는 이런 저예산 프로젝트의 의미는 무엇인가. 크게 보면 한국영화 전체에, 좁게는 명필름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는 판단이 있을 텐데.

이은 : 글쎄. 예전의 명필름 제작 경향을 보면 위험부담이 적은 '웰 메이드' 영화이면서 일정한 참신성을 내포한 프로젝트여야만 갔다. 그러나 그것이 장기적인 방법은 아닌 것 같았다. 매너리즘과 고정관념이 최대의 적이라고 생각했다. 명계남 선배가 다소 오로지 용기 하나만 가지고 고집한 <박하사탕>이나 <강원도의 힘> 같은 영화가 대중의 마음을 실제로 사로잡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상황에서, 적당히 참신하고 잘 만들기만 영화로 관객의 깊은 공감을 얻어낼 수 있겠는가 반성했다. 또, <아메리칸 뷰티>가 미국에서 대중적으로도 호응받는 걸 보면 더 솔직하고 개성있게 가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늘 다양한 영화, 다양한 콘텐츠의 부재를 말하는데, <박하사탕> 같은 영화는 우리가 만든 <접속>으로 대표되는 12억짜리 웰 메이드 영화 갖고는 안 된다. 거기에 도전해 보고 싶었다.


흔히들 명필름의 힘은 마케팅에 있다고 생각한다. 일례로 사이더스 우노필름은 제작 시스템이 좋고 명은 마케팅을 잘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한국영화인 경우 마케팅은 제작과 별개 과정이 아니라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좋은 마케팅의 비결이 궁금하다.

이은 : 제작이든 마케팅이든 일단 유기적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두 가지 다를 뼈 빠지게, 피골이 상접하게 해야 한다는 것. 그러면 그 결과가 퍼져나간다. 이 프로젝트의 목적에 집중하면서 스탭을 만나고 그들과 함께 그 뜻을 전파시킨다. 좋아서 시작하고 그것을 전염시키는 것이지 특별한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심 대표는 거기에 뛰어난 크리에이티브나 직관력을 더 갖고 있다는 게 장점이다.

심재명 : 우리는 '되는' 영화만 제작한 것이 아니라 위험한 영화들을 해왔다고 자부한다. 결과만 보고 평가하는 것 같아 불만이다. 우리는 실패할 수 있는 이야기를 겁내지 않고 낯선 이야기를 먹힐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다. 하기로 결정하면 직원들 모두 진심으로 그것을 믿어버린다. 가장 행복한 때는 관객이 100만, 200만 돌파할 때가 아니라 새벽 2, 3시에 믹싱 과정을 지켜보면서 영화가 너무 맘에 들어 이은 감독과 손잡고 눈물 흘릴 때다. 반면 그런 자기 최면에 빠지면서도 '헝그리 정신'에서 유래한 객관적 시각을 잃지 않으려고 한다. 새벽까지 감동해서 울었다고 다음날은 노느냐면 절대 아니다. 더 일찍 일어나서 마케팅을 한다.


지금 돌이켜보면 명필름의 강점은 마케팅 못지않게 상당히 안정적인 제작 시스템에 있다. 공들인 후반작업이나 개봉 3주 전 시사는 솔직히 쉽지 않다.

이은 : 상식적으로 교과서적으로 하면 되는 것을 사람들이 안 한다. 저작권 문제 해결하고 믹싱하려면 언제부터 해야 하는지 셈이 나오는데, 후반작업에 두세달이 필요하다는 건, 영화 한편만 해보면, 대학 1학년이면 알 수 있는 상식이다. 아는 것도 못하는 이유의 하나는 매너리즘이고 또 하나는 경험부족이다. 신생 프로듀서들이 많기 때문에 시간이 가면 합리화하지 않을까 한다.

심재명 : 개봉일자를 미리 정해놓고 영화를 거기 맞추는 억지가 패착을 부른다. 영화의 완성도가 잘하는 마케팅과 마찬가지인데, 좋은 개봉날짜만 받아놓고 최적의 영화를 못 만든다면 그거야말로 오류다.


명필름은 심재명, 이은, 심보경 3인이 가족 관계로 얽혀 있는 영화사다. 그것이 힘이 되기도 하지만 단점도 될 수 있다. 세 사람의 역할분담은 어떻게 이뤄지나. 실제 느끼는 장단점은 무엇인가.

이은 : 우리가 부부가 아니라 일로만 만났다면 더 나은 면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회사 때문에 가정이 도움을 받았다. 집에서 다퉈도 회사 나오면 직원들에게 그런 모습 안 보이니까. 심 대표와는 다른 지점에서 영화를 시작했지만 이번 <…JSA> 항의 사태까지 겪으면서 <씨네21>이 예언한 대로 거의 완벽한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자웅동체'가 됐다. (웃음) 내가 장산곶매 시절 겪은 싸움을 바라만 봤던 심 대표도 이번 일 겪으면서 그 지점에 같이 서 본 것이다. 그리고 심보경 이사의 경우는 더 좋은 곳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있어도 안 나간 것이 가족관계 덕을 본 것 같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사람을 못 키운 것은 반성하고 있다. 지금 멤버들이 못한다는 것이 아니라 가족 관계를 넘어서 더 인력을 키울 수 있었을 거라는 말이다.

심재명 : 직원들도 소외감 느꼈을 수 있다. 감독들도 적잖이 스트레스가 있었을 것 같다.

이은 : 일 분담 내역은 이렇다. 나는 제작 관련한 주요 일정과 예산, 현장, 필름의 완성도를 일정기간 일정 예산 내에서 뽑아내는 책임을 진다. 심 대표는 마케팅을 총체적으로 맡고, 심보경 이사는 전천후로 투입되어 영화 한편 안에서 다시 별개 프로젝트로서 신경써야 문제를 담당한다. 음악 감독과 일찌감치 논의에 들어간다거나 감독과 특정 스탭간의 다리 역할을 도모한다거나 연기자와 현장관계를 원활하게 한다거나. 마치 노하우를 갖춘 소방수 같은 역이다. 또 한 영화 진행중 다음 프로젝트를 준비하는 일도 한다. 회사 내 역할과 별개로 프로듀서로는 심 대표가 <패스워드>를 내가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심이사가 최호 감독 프로젝트를 굴려가고 있다.


제작에서 배우 관리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영화사들이 매니지먼트에 욕심내는 것도 캐스팅의 어려움 때문인 거 같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은 무엇인가. 배우들과 관계가 좋은 걸로 알려졌는데.

심재명 : 작업 과정을 즐겁게 만들고, 물질적인 것보다 진심으로 대하면서 심리적인 배려를 한다. 타이트하면서도 보람된 현장 분위기를 관리하려고 노력하니까 배우들이 그것을 느끼고 결과물이 나오는 과정에서 작업과정이 즐거웠다는 말을 들려준다. 처음 만나는 배우에게도 진솔하게 대하고 기존 스타에 의존하지 않는다. 스타를 만들어내면서 우리의 선택폭을 넓힌다. 술자리를 자주 갖거나 유독 살갑게 지내는 게 아니라, 어떤 목적으로 이용당했다는 마음이 들지 않도록 노력하는 거다. 배우에 대한 심보경 이사의 친화력도 많은 도움을 준다.


이은 감독의 경우 추진력 있고 큰판을 읽고 있다는 평판이다.

이은 : 심 대표는 주변 모순을 보고 괴로워하지만 기본적으로 자기 일만 잘하는 프로 스타일이고 나는 할 수 있는 데까지 부딪쳐보고 포기하는 스타일이다. 나는 생활의 80%를 영화 만들기로 채우고, 10%는 영화인회의로 상징되는 영화계 현안, 10%는 영화진흥위원회 일로 배분한다. 상식적으로 내가 영화를 잘 만들어도 예컨대 스크린쿼터 무너지면 산업이 맛이 가니 구조적으로 영화를 못 만든다. 그걸 아니까 아는 만큼은 일을 한다. 이번에 영진위 일을 하게 된 건, 구성원 전체를 젊고 개혁적인 사람으로 한단 말을 들었고 현장겸험을 토대로 종합촬영소의 서비스 질이나 개선에 도움이 되겠다 싶어서 간 거다. 의사소통의 고리가 빠져 놓치는 부분이 많으니까. 스크린쿼터는 동참자가 많아 여건이 좋아졌고 감시활동도 잘되고 있다. 할 수 있는 만큼 일을 나눠서 노력한 결과다. 무엇보다 이런 일들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지금부터 2, 3년이 한국영화 도약의 중대한 갈림길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게 아니면 늘 심 대표 불만이 "가정적이지 않다"는 건데 내가 뭐 잘난 놈이라고 이러겠나. 지금 조금씩 일을 나누어 잘 해낸다면 아주 멋있는 그림이, 그러니까 한국영화가 아시아영화 산업의 맹주가 되고, 스크린쿼터로 문화적 자주성을 지키고, 영진위라는 반민간 행정위원회에서 영화를 지원하고, 훌륭한 감독이 많은 나라가 되는 그림이 나올 수 있다고 보는 거다.


심 대표는 여성계에서도 큰 의미를 부여하는 인물이 됐다. 어떤 부담감, 책임감이 있는지.

심재명 : 이 감독이 본분을 다 못할 만큼 다른 일에 바쁘다고 항의하는 나도 여성 영화인 모임과 네트워킹을 남들이 의아할 정도로 열심히 하고 있다. 미력이나마 영화를 꿈꾸는 여성에게 좋은 역할 모델이 된다면 고맙지만 성공한 커리어우먼으로 환상을 주는 것은 오히려 안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여성 제작자도 많지만 나는 여성성의 문제에 솔직히 관심이 많다. 왜곡된 여성성은 지양하려 애써왔고 자매애나 모녀 관계, 여성으로 산다는 것에 대해 생각보다 훨씬 여성주의에 경도돼 있다. 영화 일을 계속하면서도 내 고민이 구체적으로 영화를 통해 구현되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보여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글:씨네21-남동철/김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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