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경비구역 JSA 이렇게 만들어졌다! [1] [2]
심재명 명필름 대표가 회고한 '구상서 최종 완성까지'

한국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감독 박찬욱)가 맹렬한 기세로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다. 지난 9월 9일 개봉한 이 영화는 9월 17일 현재 서울 72만6000명 등 전국적으로 154만5000명의 관객을 동원, '쉬리'가 개봉 11일 동안 50만명(서울 기준)의 관객을 모았던 기록을 훌쩍 넘어섰다. 밀려드는 관객에 따라 개봉관 수도 늘어나 서울 39개관 55개 스크린, 전국 145개 스크린 등 역대 최고 규모로 상영하고 있어 이런 추세라면 '쉬리'(244만명ㆍ서울 기준)와 '서편제'(103만명)의 기록에 도전해볼 만하다는 관측이다. '대박'을 터뜨린 제작사 명필름의 심재명 대표가 영화 구상 단계서부터 최종 완성까지의 과정을 회고해 보았다.

▶98년 12월 : 소설 'DMZ'를 읽고

우리 명필름의 네번째 영화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임창정, 고소영 주연)의 개봉을 끝내고 양지리조트로 MT를 갔다. 남편(이은 감독)의 감독 데뷔작이고, 내가 프로듀서를 맡은 이 영화의 개봉 성적은 그럭저럭이었고, 우리의 기대보단 훨씬 못미쳐서 의기소침해 있을 때였다. '결과'에 깨끗이 승복하는 수밖에 없었고 그런 마음으로 회사 식구들끼리 몰려간 MT 자리에선 앞으로 어떤 영화를 할 것인가, 새해를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등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때 이은 감독은 가을쯤에 '닥터 봉'의 이광훈 감독이 영화로 만들고 싶다고 가져온 소설 'DMZ'(박상연 지음, 민음사 발간)를 펴들었다. 촬영으로, 현장으로, 사무실 일로 바빴던 우리는 그 책을 두어달 그냥 덮어두고 있었고, 막 감독일을 끝낸 이은씨는 MT간 첫날, 밤을 세우며 읽은 후 이 이야기를 영화화하자고 제의했다. 젊은 직원들도 돌려 읽고 만장일치로 찬성했으나 오히려 나는 걱정이 앞섰다. 이런 심각하고 무거운 이야기에 과연 젊은 관객들의 마음이 끌릴까? 결국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 공감한 기억을 믿음 삼아 남편의 제의에 동의했다. 그렇게 '분단'을 소재로 한 소설 ‘DMZ’는 영화화가 결정되었다.

이제 우리 명필름의 화두는 '분단'이다!

▶99년 1월 : 박찬욱 감독을 만나다

박찬욱 감독이 연락을 받고 찾아왔다. 그전, 5~6개의 시놉시스와 트리트먼트(본격적인 시나리오의 전 단계)를 갖고 우리와 만났던 박찬욱 감독은 그가 우리에게 보여준 '자신이 준비한 영화거리'들이 거절당한 것에 실망했으나, 'DMZ'의 연출 제의엔 흔쾌히 승낙했다. 그 결정엔 이틀이 채 안 걸렸다. '달은 해가 꾸는 꿈' 등 앞의 두 작품이 상업적으로 실패했으나, 그의 준비된 5~6개의 이야기를 읽으며 '많은 것을 가슴과 머리에 갖고 있는 젊은 감독'이란 생각이 들었다.

햇빛은 그야말고 쨍하게 빛나고, 그러나 겨울 바람이 스산하게 불던 그날, 회의실에 모여 있던 우리에게 눈인사를 하며 그가 신발을 벗던 그날, 원작 'DMZ'는 '공동경비구역 JSA'의 감독을 만난 것이다.

99년 봄, 여름 : 무르익는 시나리오

원작 'DMZ'는 시나리오화 하면서 많은 것이 바뀌었다. 원작의 주인공이었던 중립국 감독위원회 소속 베르사미 소령의 성이 여성으로 바뀌었고, 1, 2, 3부로 단락을 나누며 현재→과거→현재의 형식의 틀을 갖춘 것이나 남북 병사들의 ‘진한 교감’이 많은 부분 새롭게 창조되는 등…. 여기에 김현석, 이무영, 박찬욱 감독의 시나리오 능력이 발휘되었고 후에 북측 병사의 대사와 북쪽 관련 묘사의 리얼리티를 위해 귀순 작가 정성산씨도 합류했다.

계속되는 시나리오의 버전업을 지켜보면서 박찬욱 감독의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능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강릉의 작업실에서, 이무영 작가의 집에서, 박찬욱 감독의 집에서 '공동경비구역 JSA'의 시나리오는 그렇게 무르익어가고 있었다.

▶99년 겨울 : 시나리오 탈고

1년 가까이 끈 시나리오 작업이 드디어 끝을 맺었다.

우리 집에서 시나리오에 대한 마지막 이야기를 나눈 후 왠지 헤어지기가 아쉬워 대학로의 소주집을 찾았다. 박찬욱 감독, 이은씨, 나, 제작실장과 함께한 자리. 소박한 안주에 비워지는 소주잔…. 영화의 첫 단추는 그렇게 꿰어졌고, 이제 진짜 출발이 시작된 셈이다.

▶2000년 겨울 : 소피, 경필, 수혁을 찾다

'소피, 이영애'

이영애를 호텔 커피숍에서 만났다. 실제 얼굴은 처음 보았다.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만큼 하얗고 아름다운 얼굴, 단정한 앉음새. 그런데 저 여린 목소리로 수사관 ‘소피’가 가능할까? 그러나 그녀의 엷게 탄 원두커피 색 같은 눈동자가 그런 우려를 잠재웠다. 스위스 여인과 한국 남자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녀. 정말 그 대목에서 이영애만큼 적역이 있을까.

며칠이 지나지 않아 그녀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시나리오를 보고 자신이 할 역할을 '양들의 침묵'의 조디 포스터 쯤으로 생각해도 되겠느냐고.

가슴에 어린 시절의 상처를 안고, 얇은 입술에 냉정한 미소를 띄워올리며 그 끔찍한 연쇄 살인사건을 풀어 나갔던 그녀. 그렇게 생각해 준다면 황송하지. 물론 영화 속 소피는 이영애에 의해 또다른 여자 수사관으로 태어났다.

'경필, 송강호'

장고를 하며 고민을 했던 모 배우가 결국 최종 거절 의사를 밝힌 후 우리는 방향을 바꿔 배우 송강호를 찍었다. 초조한 마음으로 전달한 시나리오를 읽은 후 그는 대번 OK 사인을 보내왔고 우리는 기뻐했다. 그러나 이게 웬일? 도저히 할 수 없겠다며 며칠 후 번복했다. 눈앞이 캄캄하고 가슴이 막혀왔다.

언제나, 영화화 작업에서 제일 큰 어려움은 캐스팅이다. 죽기살기로 매달려 뽑아낸 시나리오가 최선이라고 생각한 배우에게 거절당했을 때 느끼는 실망감은 아는 사람만 알리라. 아, 우리는 이제 '최선'이라고 생각한 배우에게 거절당하고 다시 '차선'을 찾아야 하나….

며칠 후 이은씨와 다시 만난 그는, 다시 한번 자신의 말을 번복했다. 고심에 고심이 오히려 화를 불렀다며 다시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의 느낌으로 돌아와 마음을 결정했다나. 휴우, 안도의 한숨이 저 밑에서부터 올라왔다.

'수혁, 이병헌'

이병헌은 흔쾌히 출연 의사를 밝혔다. 아직 공익근무 요원이었던 터라 짧게 자른 머리에 다소 군기(?)가 든 모습의 그는 시나리오에서 막 튀어나온 이수혁인 듯했다. 가장 빨리 캐스팅 제의에 응했던 그였으나, 후에 자신의 역할과 캐릭터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고 방황했던(?) 그는 박찬욱 감독과의 길고 긴 독대의 시간을 거친 후 자신의 역할을 다잡았다. 그때의 고민이 아마도 영화 속 이수혁을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연기로 표현해내게 했던 구심점이 됐으리라.

▶2000년 2월 : '이등병의 편지'를 불렀던 워크숍

90여명에 가까운 스태프와 배우가 양평으로 워크숍을 떠났다. 대사 리딩과 각자 역할 소개와 토의, 친목의 목적으로 떠나는 워크숍이다. 워크숍도 이번이 우리 영화사로선 7번째이다. 매번의 워크숍이 그 구성원의 색깔에 따라 분위기도 다 다른데 이번은 어떨까.

이례적으로 산의 정상까지 오르는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눈 쌓이고 미끄러운 산길을 오르면서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며 산꼭대기까지 올라갔다 내려온 우리들은 땀과 가쁜 호흡으로 얼굴이 발그레해졌다. 그날 밤, 모든 일정이 끝나고 펼쳐진 단합대회에선 90여명이 함께 우리 영화의 주제곡인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를 불렀다. 어깨와 어깨를 걸고, 손을 맞잡고. 곧 시작될 길고 긴 촬영에 무사함만 깃들기를 소망하며….

▶2000년 6월 5일 : 판문점 오픈세트 공개.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6ㆍ15 남북 정상회담을 일주일 앞둔 날. 8억원을 들여 지은 판문점 오픈세트를 매스컴에 공개했다. 이 영화에 대한 대외적 관심이 예상치 못했던 사회 변화 및 정세 때문에 증폭되는 행운을 얻은 셈이다.

시대를 예견하는 기획력이라고 누군가가 농을 건넸으나, 그건 정말 그저 농담일 뿐. 남북의 '화해 무드'는 '공동경비구역 JSA'에 예상치 못한 날개를 달아주었다. 또 누군가는 시대의 변화 때문에 시나리오를 고쳐 찍어야 되지 않느냐고 우문을 던지기도 했으나, 이미 이 영화는 촬영을 거의 마쳐가고 있었다. 기획 초기엔 이 영화가 개봉될 때쯤 '서해교전' 식의 냉전 분위기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철없는(?) 바람을 갖기도 했으나 이제 '공동경비구역 JSA'는 마지막 완성을 향해 올곧게 나아가고 있었다.

▶2000년 8월 : 첫 기술시사회

밤 10시가 다 되어서야 시작된 첫 기술시사회. 말 그대로 만든 이들끼리 모여 완성된 프린트 상태를 보며 점검하는 자리이다. 1년 가까이 고생한 수십명의 스태프와 연기자들은 반가운 얼굴로 인사를 나누고 삼삼오오 모여 앉아 이내 숨죽여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저 눈밭 장면에서는 양말을 다섯 켤레 껴신고, 얼은 밥을 국에 말아 훌훌 마셨지, 아마. 주연배우 한명 나오지 않는 마지막 촬영날, 배우들 모두 자발적으로 모여 5개월여 총 58회의 촬영이 무사히 끝났음을 기뻐하며 샴페인을 터뜨렸다지.

추위에 떨던 첫 촬영이, 막 시작된 여름의 더위와 싸우며 계속될 때까지, 그들의 땀과 노력이 수퍼 35mm 카메라 기법을 도입한 시네마스코프 화면(보통 영화보다 가로의 비율이 더 높은 웅장한 화면)에 그대로 예민하게 살아 있었다. 마지막 장면을 바라보던 내 눈에 눈물이 맺혀왔다. 가슴까지 뜨거워졌다. 만든 사람이 자기네 영화보고 웬 눈물? 어서 눈물을 닦아 동료들에게 들키지 말아야 할 텐데.

어둠 속에 앉아 있는 그들도 나 같을까? 시사가 끝나고 그냥 헤어지기 아쉬운 스태프와 배우들은 밤 12시부터 동이 트는 시간까지 술을 마시며, 스스로 영화에 도취되어 혹은 그저 기쁜 마음으로 뜨거운 감정을 함께 나누었다.

(심재명 명필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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