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리오 절대로 이렇게 쓰면 안된다

     [지문/대사/등장인물]     [셔레이드 왜 중요한가?]     [시나리오 절대 이렇게 쓰면 안된다]
예전에 연극연출을 한적이 있습니다. 물론 배우로써 무대에 선 경험도 있구요. 그런데 그때 배웠던 것 중에 배우가 무대에서 해서는 안되는 동작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무대에서 등을 보이는것, 또는 고개를 숙이고 대사를 한다던가 관객쪽이 아닌 무대쪽으로 대사를 하는것, 물론 예외적인 상황은 제외하고 말이죠. 이외에도 여러가지 제약이 따르는 동작들이 있습니다. 이런 제약을 두는 이유는 결국 관객에게 효과적인 연기를 할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겠죠. 그만큼 감동도 덜할테고 말입니다.

마찬가지로 시나리오를 쓰는데 있어서도 이런 약간의 규칙들이 존재합니다. 다시 말하면 이런식으로 쓰지 말라는 얘기죠. 고객감동의 차원하고 똑같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좀 더 좋은 시나리오를 쓰기위한 것이니까 새겨들을 필요가 충분하다고 여겨집니다.

미국의 여류 시나리오 작가인 프랜시스 마리온이 초보 시나리오 작가들이 범하기 쉬운 서른한가지 잘못을 지적한 것이 있는데 이것을 황왕수씨가 그 자신의 경험에서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참고해서 선정한 것이 있습니다.

지금부터 그 내용을 소개하려 합니다. 다만 머리속에 유념해야 될 사항은 아래의 내용에 꼭 맞게 시나리오를 적으라는 것이 절대 아니라는 겁니다. 참고로 삼아서 "정말 이런 부분은 조심해야 겠구나" 라는 것을 느끼라는 의미에서 적는 겁니다. 개인적 의견으로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차근 차근 정리하며 읽어보세요!

하나. 스토리에서 영상적인 재료의 부족

그림이 되지 않는다든가, 또는 그림이 되기 어려운 소재가 너무 많은 경우, 그 결과는 영상으로 만족스럽지 못한 것이 된다.

둘. 쓰기전에 충분히 숙련되어 있지 않다.

구성의 불충분, 인물에 관한 지식의 부족 등 충분히 준비되어 있지 않은데 그대로 쓰게 되면, 그것은 틀림없는 실패작이 된다.

셋. 너무 약한 Struggle, 그래서 약한 클라이막스

Struggle이 약하면 절정으로 끌어올리는 데 충분하지 못하게 되고, 따라서 정상으로 올라가는 것도 약해지게 된다.

넷. 추상적인 표현

이것은 주로 지문에 관한 것인데, 제3자가 읽어서 구체적인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는 표현은 좋지 않다. "민철은 더욱 고독해진다" 등과 같은 마음의 내면만을 쓴 지문. 또 마음의 내면이 아니더라도 "시간은 거침없이 지나간다"와 같은 표현도 영상화 하기가 어렵다.

다섯. 영상으로 나타내려고 하는 것이 완전히 표시되어 있지 않다.

자기는 표시했다고 하더라도 제3자에게는 잘 알 수 없는 경우가 있다.
"민철은 차 안에서 술을 마시고 있다"
라는 지문이 있다고 하자.
그 앞에 민철이 택시를 잡는 장면이 있다면, 이 지문의 민철은 뒷좌석에 앉아 술을 마시고 있는 것을 알수 있지만, 그런 장면이 없다면 민철이 차를 운전하면서 술을 마시고 있는지, 운전자가 따로 있는지 확실하지가 않다. 음주운전과 그렇지 않은 경우는 크게 다른 것이다.

여섯. 대사로 설명하는 부분이 너무 많다.

대사를 지나치게 쓰는것은 잘못이라고 마리온 여사는 지적하고 있다. TV 드라마의 경우는 대사를 많이 쓰는 것이 좋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영화시나리오는 그렇지가 않다. 대사가 드라마로서 살아있는 경우라면 어느정도 많더라도 상관없다. 문제는 설명을 위한 대사가 과다한 경우인데, 이것은 어떤 경우든 안된다.

일곱. 입버릇 처럼 상대의 호칭을 부르는 대사

"준이야, 너 학교가 싫으냐?"
"어머니, 오늘은 어디 다녀오셨어요?"
"아버지, 요즘 어디 편찮으세요?"
이런 경우의 "준이야" "어머니" "아버지"는 부르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대사속의 호칭은 대사의 박력을 강하게 할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원칙이므로 무의미한 호칭은 삭제해야 한다. 대사를 주고받는 사이에 가령 "아버지!"하고 상대의 호칭만을 안이하게 써서, 호칭 다음에 무엇을 말할 것인지 알수 없는 대사는 실수라고 해도 어쩔수 없다.

여덟. 문장과 같은 대사

설명을 위한 대사에는 자연적으로 이러쿵 저러쿵 하는 문장과 같은 대사가 많아진다.
"돌아오는 길에 슈퍼마켓에 들른 나는 마침 물건을 사러온 민철씨의 부인과 우연히 만났어요" 이런 대사이다. 이것 또한 생생한 대사라고 하기는 어렵다.

아홉. 대사에 개성적인 차이가 없다

대사에 차이가 없다는 것은 누구나 똑같은 대사를 말하는 것인데, 여기서 지적하고 싶은 것은 어떤 인물의 대사에나 똑같은 <버릇>이 있는 것은 부자연스럽다는 것이다.
"나는 그래서, 그것을..." "나도 그것은 전부터..."
이렇게 대사를 끝까지 말하지 않고 도중에서 끊어버리는 일은 종종 있다.
이런 기법은 의미만 알수 있으면 템포를 주기 위해서도 당연한 처리이다.
그러나 등장인물 모두가 이렇게 도중까지만 말하는 <버릇>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부자연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것은 한 예에 불과하지만, 각 인물의 대사에 똑같은 어떤 <버릇>을 가진 것을 작자는 모를때가 있다. 중요한 것은 인물의 성격을 베이스로 해서 대사를 써야 하는 것이다.

열. 주요인물의 과거로 자주 되돌아가는 스토리

회상이 많은 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과거로 빈번히 되돌아가 회상하지 않으면 현재의 상황이 설명되지 않는 그런 스토리는 안된다는 것이다. 회상이란 본래 설명을 위해서는 쓰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열하나. 어느 인물이 주요인물인지 알 수 없다

어느 인물이나 똑같은 비중으로 취급되어 있는 것인데, 특히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 수 없는 것은 가장 나쁘다.

열둘. 주인공이 충분히 알려져 있지 않다

주인공이 도대체 어떤 인물인지 애매한채 드라마가 진행되는 것은 좋지 않다.
주인공에 관해서는 적어도 어떤 일을 하면서 생활하는 인물인지, 가족은 있는지 없는지, 있다면 어떤 가족구성인지, 주거는 단독주택의 자기 집인지 아니면 전세인지, 그것도 아니면 식객인지, 그런 정도는 도입부에서 알려둘 필요가 있다. 일부러 그 특정부분을 숨길 필요가 있는 스토리라면 모르지만...

열셋. 인물의 비중이 도중에서 바뀐다

예컨대 전반에서는 민철이 상당히 비중이 있게 취급되어 있는데, 후반에서는 별다른 활약도 없고 별로 중요한 인물도 아닌것이 된다. 그 대신 전반에서는 거의 활약이 없던 현주가 후반에서는 무게있게 취급되어 인물의 비중이 도중에서 바뀌는 것은 안된다. 인물의 변화에 대응하여 이야기도 주계와 방계가 뒤바뀌게 되면 이제는 어떻게 할 수도 없다.

열넷. 인물이 너무 많아서 혼란스럽다

사람이 많은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비중을 가진 인물이 너무 많은 경우이다.

열다섯. 확실한 목적없이 인물이 나타났다 사라진다

모든 등장인물은 그 인물을 등장시키는 뚜렷한 목적이 없어서는 안된다.

열여섯. 동기가 없는 것

어째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또 왜 그런 말을 했는지, 그 동기가 확실하지 않고 그저 맹목적으로 행동하든가 말하게 해서는 안된다. 사건에 대해서는 특히 동기가 중요하다.

열일곱. 관객이 받아들일수 없을 정도로 인간성을 상실한 인물의 등장

너무나 비인간적인 인물, 짐승과 같이 잔인한 인물, 극단적으로 감정적인 인물 등, 이른바 상식의 틀을 벗어난 인물이 특수한 인물로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성이 있는 인물로 등장하는 경우에는 리얼리티를 상실하게 된다.

열여덟. 부자연스럽게 오해를 잇따르게 하는 설정

민철이 현주에 대해 오해를 하고 있다고 하자.
그 오해는 현주가 한마디 변명만 하면 쉽게 해결될 것인데도 불구하고, 부자연스럽게 현주에게 그것을 말하게 하지 않고 스토리의 편의상 계속해서 민철에게 오해를 갖게 하는 묘사는 안된다.
오해란 당연히 오해하더라도 할 수 없다고 하는 단순한 이유가 있어야 하며, 또 오해가 풀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우연이 아닌, 풀어질 수 없는 필연성이 계속되지 않아서는 안된다.

열아홉. 작품스타일의 불통일

작품에는 크게 분류되는 스타일이라는 것이 있다. 장르라고 해도 좋다. 예컨대 도입부에서부터 전반부는 희극으로 생각되는데, 도중에서 갑자기 진지한 드라마로 바뀌든가 하면, 그것은 주제가 바뀌는 것과 마찬가지다.

스물. 인물의 감정반응이 관객이 납득하는 것과 다른 경우

작중인물의 리액션이 관객의 리액션과 달라져서는 중요한 내용이 이해되지 않게 된다. 특이한 개성이 특이한 리액션을 일으키는 경우라고 해도 그 반응자체가 관객의 이해를 뛰어넘는 특이한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 만일 그것을 허용하게 되면 무엇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인물이 된다. 이른바 작자의 독선적인 잘못이 되는것이다.

스물하나. 옥타브를 끌어올리는 것이 극적인 것은 아니다

시나리오를 극적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감정의 옥타브를 부자연스럽더라도 올려주게 되면 극적 박력이 강해진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감정의 옥타브를 올려주는 것보다 차라리 억제하는 편이 영화의 깊이를 더해 주고 농밀해지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스물둘. 감정적으로 하려는 노력이 너무 지나치면 역효과가 된다

등장인물이 감동하여 울부짖는 씬을 보고 오히려 기분이 상할 때가 종종 있는것은 작자가 감동적인 씬이라고 해서 너무 지나치게, 말하자면 너무 겉돌았기 때문이다. 감동적인 영화는 감정을 표출한다고 해서 감동적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표출하면 할수록 그것은 관객의 마음에 충격을 주든가 거부감을 일으키게 된다.

스물셋. 시간경과의 무신경

친구가 찾아온다.
"자! 올라오게" 하자 친구가 집안으로 들어온다.
다음은 용건에 대한 대화를 1~2분간 한다.
얘기가 끝나자 "그럼, 이만 실례하겠네" 하고 친구가 돌아간다.
이런씬은 시간을 무시한 잘못이다.

스물넷. 대사와 동작이 연동되지 않는 잘못

예를 들면 사나워진 여성이 "안돼, 안돼" 라고 말하며 저항하는 것은 처음에 하지 않으면 안된다. 난폭한 행동이 한참 진행되고 나서 말할 때는 의미가 다소 달라진다.
즉 대사와 동작의 연동에는 연출상 정해진 시간적인 계산이 존재하는 것이다.

스물다섯. 이름이 비슷한 혼란

영란과 난영이 등장한다든가 형준과 준형, 민구와 민우가 등장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스물여섯. 사고 특히 죽음의 활용

이야기의 해결이 어려울 때, 갑자기 인물을 죽게 하는 것은 최하의 방법이다.
간단히 살인을 하든가, 간단히 자살을 하게 하는 등 너무 안이하게 죽음을 다루어서는 안된다.
되도록이면 필사적으로 죽음 이외의 방법을 택하거나 죽는 사람이 나오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것이다.

이상의 내용이 시나리오를 쓸 때 유념해야 할 사항들입니다.
그런데 강조해야 될 중요한 설명이 남았습니다.
중요한 설명이라고 했는데 바로 이 설명에 관한 내용입니다.


절대 설명이 많은 시나리오는 안됩니다.

물론 여섯번째로 지적한 사항이기도 하죠. 황왕수씨의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황왕수씨가 신출나기 였을때 시나리오 제1고를 써서 영화사의 제작담당 중역에게 제출했던 일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읽고나서 이렇게 말했죠. "여보게 드라마란 것은 설명이 아니네. 이 시나리오는 전부 설명뿐이야" 그 당시 그는 시나리오를 되돌려 받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때도 이미 설명이 많은 시나리오는 안된다는 것을 책에서 보고 또 선배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죠. 알고는 있었어도 실제로 쓴 것은 설명뿐이라는 말을 들어야 하는 시나리오였던 것입니다.

시나리오 속에서 설명이라는 것은 필요한 요소이며, 설명이 없는 시나리오란 있을 수 없습니다. 문제는 설명을 어떻게 교묘하게 드라마속에 집어넣는가인 것입니다. 통상 드라마 속에서 설명하지 않으면 안되는 요소가 절반은 차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나머지 절반은 묘사입니다. 이 절반씩의 요소를 그대로 표현하게 되면 당연히 설명 50%의 시나리오가 됩니다. 그런데 이 설명을 교묘하게 드라마속에 엮어넣는데 성공했다고 합시다. 그러면 50%의 설명은 묘사에 의한 드라마에 흡수되어 점차 제로에 가까워지는 거죠.

또하나 잊지 말아야 할것은 시나리오 기법에서

<구차스런 설명은 첫머리에 가져가라>
라는 말입니다. 아무래도 설명은 해둘 필요가 있는 일인데, 복잡하고 까다로워 잘 알 수 없는 것은 되도록 시나리오의 첫머리에서 하는것이 좋습니다. 중간에 복잡한 것을 설명하는 것! 좋은 방법이 아니죠.

관객의 입장에 서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관객들은 처음 영화가 시작될 때는 백지상태에 있습니다. 어떤 얘기인가에 대해 강한 관심을 가지고 있죠. 이야기를 위해 전제가 되는 것, 예컨대 인물관계나 상황의 설정을 빨리 머리속에 넣으려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는거죠. 따라서 구차스러운 설명을 하더라도 비교적 잘 이해해 줍니다. 하지만 이미 내용이 전개되고 진행중인 상황이 되면 관객은 지금까지 보아온 드라마의 기억라인과 그 설명이 겹쳐지게 되어 이해하는 것이 귀찮은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그 결과 혼란을 가져오고 필요한 설명이 머리에 들어오지 않게 되는거죠.

관객들의 이런 심리상태까지 고려한다면 왜 <구차스런 설명은 시나리오 첫머리에 가져가라>는 말이 나왔는지 알 수 있겠죠?

<이 글의 대부분은 황왕수씨의 시나리오 작법에 관한 저서 <시나리오 작법 48장>
<시나리오 기본정석> 에서 인용한 내용임을 밝혀둡니다>


<황왕수 : 1937년 서울 출생. 전북대 영문학과 졸업. 국립영화제작소 감독. 이화여대 강사. TBC-TV PD. 문화영화 200여편 제작연출. 대종상 심사위원 한국 비디오 영상회 이사장 역임. 다보문화 대표
저서/역서 : <영화제작기법> <사진백과사전>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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