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리오란 뭘까?
가장 쉽게 설명해서 영화대본이라고 말하는데 영어로는 scenario 로 표기됩니다. 원래 시나리오라는 말은 이탈리아 언어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탈리아에서는 현재 그렇게 부르지 않고 있고 미국에서 역시 스크린 플레이라는 명칭을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단지 일본과 우리나라에서만 유일하게 통하고 있는 언어라는 거죠. 사실 어떻게 부르는가는 별로 중요한게 아니죠. 가장 쉽고 간단하게 영화대본이라고 하는것도 좋습니다.

시나리오 곧 영화대본, 이건 너무 쉽죠? 정말 말그대로 쉽게 설명한 표현입니다. 그러면 쉽게 설명했으니 여기서 끝내도 될까요? 아니 좀 더 멋진 표현으로 설명하는건 어떨까요? 애인이나 혹은 친구들과의 대화내용중에 영화얘기가 나오면 그때 시나리오에 대해서 스쳐가듯 설명하는 겁니다. 시나리오란 영상으로 들려주는 이야기이다.

사실 제가 내린 정의는 아닙니다. 영화 평론가 유지나씨가 쓴 책에 담긴 내용인데 참 멋있는 얘기죠? 먼저 이렇게 정의를 내리지 못한 것이 유감일 정도죠. 제가 시나리오를 써본 경험에 의하면 머리속에 이미 영화 한 편을 만들어 놓고 있었죠. 그것은 바로 제가 생각하고 있던 영상들인데 그 영상들을 하나 하나 꺼내 글로 옮기니까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거였죠.

영상으로 들려주는 이야기! 이것이야말로 시나리오를 멋지게 설명하고 있는 표현입니다. 정말 잘 기억해 두세요. 시나리오란 영상으로 들려주는 이야기이다. 이 정도면 충분히 설명이 되었다고 생각하는데 아직도 모르시는건 아니겠죠?

자 그럼 시나리오를 한 번 구경할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영화 닥터봉의 시나리오가 가장 훌륭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많은 시나리오를 읽어왔지만 머리속에 영상으로 영화를 보는듯 화면이 지나가는 느낌을 가장 많이 받은 시나리오이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의 이유는 매우 많이 웃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즐거웠다는 얘기도 되고... 그것은 앞에서 말한것과 연관이 있는데 대부분의 시나리오들은 우스운 장면을 묘사해도 영상으로 표현될때 그 효과가 나타나는것이 보통입니다. 바꿔 말하면 희극적인 장면들이 시나리오상에서는 별로 우스운 느낌을 받을수 없다는 것이죠. 그런데 닥터봉은 시나리오 그 자체로도 매우 통쾌했습니다. 화면이 그대로 머리속에 나타났기 때문이죠.

자! 닥터봉의 첫장면을 살펴볼까요?

1. 암전된 화면

(준우의 낮고 다정한 목소리)
준우:"(E)여기 편하게 누워"
소녀:"(E)벌써 해요?"
준우:"(E)겁낼거 없어. 남들도 다 하는거야"
소녀:"(E)저 다음에 할래요. 너무 무서워요. 아플까봐"
준우:"(E)처음이라서 그래. 자 크게 벌려. 아프지 않을테니까"
(옷벗는 것 같은 소리 들린다. 이어서 윙~ 전기드릴소리)

2. 치과 진료실
(컴컴한 터널이 끝나면 단발머리 여고생이 입을 최대한 벌린 모습니다.
흰 가운을 입은 준우. 치과용 드릴로 충치를 갈기 시작하고 여고생, 교복 치마를 움켜잡는다)

약간은 야하기도 한 장면이죠? 관객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첫번째 씬에서 전기드릴소리와 함께 두번째 씬으로 넘어가는 장면이 이 영화 전체의 분위기를 나타내 줍니다. 제 생각엔 닥터봉의 시나리오 작가(육정원씨) 역시 이 첫장면을 매우 많이 고민했을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너무나 탁월한 선택이었죠. 그 어떤 장면도 이만큼의 효과를 기대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다른 장면도 살펴볼까요?

55. 동 거실

(만화책이 바닥에 널려있다.
커피를 마시며 꿈꾸듯 말하는 여진.
훈 강아지를 품에 안은채 듣고 있다)
여진:"샤를 보아이어란 배우가 있었는데 잘생기고 품위있는 남자 배우야"
훈:"그럼 여자들한테 인기가 있었겠군요. 우리 아빠처럼"
여진:"하지만 그 남자한테는 오직 한 여인만 있었어.
그들은 처음 만나서 사십사년이 지난 후까지 연인이요, 친구요, 반려자였어.
그러다가 그만 아내인 패트리샤가 간암에 걸렸어"
훈:"(슬프게)우리 엄만 유방암이었어요"
여진:"(훈의 머리를 쓰다듬는다)그랬구나. 이 얘기 그만할까?"
훈:"아뇨. 마저 해주세요"
여진:"그는 아내의 병상을 지켰어. 여섯달동안이나 밤낮으로.
그러나 그는 이미 정해진 운명을 바꿀수 없었어"
훈:"모든게 다 주님의 뜻이래요"
여진:"주일학교를 열심히 다녔구나"
훈:"예.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여진:"패트리샤는 남편팔에 안겨서 죽었지.
그리고 이틀후 남자도 죽었어"
훈:"너무 슬퍼서 심장이 뻥 터졌구나"
여진:"그건 아니지만 마찬가지야.
그녀의 사랑은 나에게는 생명이었다.
이런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니까"
훈:"자살했어요?"
여진:"아름다운 이야기지.
수많은 여배우들의 유혹과 여성팬들이 있었는데도 오직 한 여자만을 사랑했어.
얼마나 멋진 남자니?"
훈:"누난 그런 남자를 찾았어요?"
여진:"불행히도 아직 못 찾았어.
요즘 남자들은 연애를 무슨 취미생활 쯤으로 안다니까.
(벌렁 누우며)정말 재미없는 세상이야. 낭만이라곤 눈씻고 찾아봐도 없으니...
첫 눈이 내릴때는 사랑하는 사람하고 같이 있고 싶은데..."
(훈 생각에 빠져서 여진을 본다)

닥터봉의 중반부에 나오는 장면입니다. 사랑에 대한 내용을 샤를 보아이어란 배우와 그의 아내의 관계를 들어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시나리오 상의 내용이지만 사랑에 대한 얘기가 너무 아름답게 표현되어 있죠? 또한 그 중간에 훈이 엄마가 암으로 돌아가셨다는 내용도 적절하게 설정되어 있습니다. 작가의 사랑에 대한 가치관이 상당히 낭만적이라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이 부분이 시나리오의 주제를 담고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일단 두 장면을 감상해 봤는데 시나리오를 많이 보는것이 시나리오를 쓰는데 도움이 되는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영화 진흥공사에서 매년 발간하는 '한국 시나리오 선집'이 2001년도까지 19권을 출판을 하였고 이후로 2006년까지는 매년 발간을 하였는데 한번쯤 읽어보는게 무척 좋을것 같습니다. 아예 두권 정도 사서 가지고 있는것도 괜찮을것 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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